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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100년 대기획] <13> 아물지 않는 전쟁 상흔

[한·일100년 대기획] <13> 아물지 않는 전쟁 상흔

입력 2010-03-24 00:00
업데이트 2010-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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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피해 2~3세 1만여명 무관심속 고통

한·일 관계에서 원자폭탄 피해자를 비롯해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모두에게 잊혀져 가고 있지만 잊을 수 없는 역사의 과제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살아남은 자와 그들의 죄 없는 자녀들 몫이 됐다. 피해자들은 정부의 무관심과 일본의 외면, 사회의 편견등 겹겹의 고통속에서 살고 있다. 광복과 종전 6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피해자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은 대를 잇는 아픔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짚어 보고,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방향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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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2세 환우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애쓰다 생을 마감한 김형율씨의 추모식에서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2005년 숨진 김씨는 국내 첫 원폭피해자 2세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혀 주목을 끌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제공
피폭 2세 환우들의 인권신장을 위해 애쓰다 생을 마감한 김형율씨의 추모식에서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2005년 숨진 김씨는 국내 첫 원폭피해자 2세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혀 주목을 끌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제공


●국내환우 150여명 10세이전 사망

한국원폭2세 환우회장 한정순(52)씨는 넓적다리에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인공관절 수술을 두 번이나 했지만 여전히 거동이 불편하다. 20여년간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팔 연골에 이상이 생겨 이젠 직업을 구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에게 몸의 고통보다 더 큰 아픔은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아들이다. 올해 스물여덟 살인 아들은 1급장애로 간단한 대화정도만 가능한 상태. 그는 “엄마 피를 받아 저렇게 아픈가 싶어 마음이 항상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겁고 아립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제 몸 하나조차 움직이기가 힘든데 아들까지 무슨 죄가 있어서 저런 병을….”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생계 때문에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다가 각각 19세와 28세가 되던 해에 원폭 피해를 입었다. 이후 태어난 그의 오빠 2명은 심근경색을 앓고 있고, 언니 둘은 피부병과 다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아들과 본인의 병으로 남편과 불화가 잦았던 한씨는 이혼한 뒤 아픈 몸을 이끌고 간병인 일을 하며 근근이 지내고 있다.

●빈혈 발생확률 일반인의 88배

원인 모를 병마에 ‘대 이은 고통’을 겪는 것은 비단 한씨만의 일이 아니다. 일본 정부와의 기나긴 싸움 끝에 어렵게 원호수당을 받고 있는 원폭피해 1세대들과 달리 2, 3세 환우들은 우리나라와 일본 정부의 무관심 속에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한국원폭2세 환우회에 따르면 한씨와 같은 원폭 피해자 2~3세는 1만여명(추정)이나 된다. 이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 원폭피해 2세 1226명을 대상으로 건강실태를 조사한 결과 남성의 경우 빈혈 발생확률이 일반인의 88배에 달했다. 심근경색·협심증이 81배, 우울증은 65배, 천식은 26배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원폭피해 2세 중 7.3%(300명)는 사망했고, 사망당시 연령이 10세 미만인 경우가 52.2%를 차지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심진태 합천지부장은 “일본 정부는 원폭 피해문제가 1세대에서 끝나기만을 바라고 미국이나 우리나라도 책임을 회피하려는 상황이기 때문에 유전성 입증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발병률이 이렇게 높은 만큼 2세들의 의료비 지원이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자신이 원폭2세 환우임을 밝힌 고(故) 김형율씨도 생전의 대부분을 병실에서 보냈다. 그는 태어난 지 20일이 될 때부터 선천성 면역글로불린결핍증을 앓다 2005년 34세로 숨을 거뒀다. 하지만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정부에 호소해 원폭피해자들의 기초현황과 건강실태 조사를 이끌어내고 2세 환우들의 인권 운동에 앞장섰다. 김씨의 부친인 김봉대(74)씨는 “아직도 고통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데 정부는 피해자들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국적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다.”고 울먹였다.

●“지원 특별법 조속통과를” 호소

원폭 피해 1세대들에 대한 지원도 민간차원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한국인은 7만여명. 이 가운데 2만 3000여명이 귀국했는데 3월 현재 2662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의 지원은 거의 없고, 일본이 정부차원이 아니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국내 피폭자들에게 1인당 원호수당 월 45만원가량과 연간 194만원 한도의 진료비 등을 지급하고 있다. 이 때문에 1, 2세대 원폭피해자들과 시민단체 등은 ‘특별법’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나라당 조진래 의원이 발의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와 그 피해자 자녀의 실태조사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진경숙 한국원폭2세 환우회 사무국장은 “혹시나 누가 알까 싶어 아프다고 말도 못하고 사는 원폭 2, 3세들에게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움”이라며 신속한 법안통과를 호소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2010-03-2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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