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박물관 ‘굳세어라’展 월남한 12인 초청 위안잔치
“피란 간다.”는 말만 듣고 부모를 따라나섰다. 아버지는 집문서며 금붙이를 구덩이에 파묻고는 “두 달이면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함경남도 흥남부두에서 거제도행 LST수송선을 탄 주금순(69) 할머니는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60년째다.12명의 ‘금순 할머니’들이 22일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반주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6·25전쟁 60주년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는 22일 특별한 잔치가 열렸다. ‘금순 할머니 위안잔치’였다. 박물관이 6·25 특별전 ‘굳세어라, 금순아’ 개막에 맞춰 전국의 ‘금순 할머니’를 수소문해 연 합동잔치였다. 전쟁을 겪고 월남했으며 이름이 금순이인 사람이 대상이었다. 그렇게 모인 할머니는 주금순, 한금순, 송금순, 유금순, 김금순, 고금순, 차금순 등 12명.
‘금순 할머니’들의 사연은 저마다 절절했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할머니들에게 전쟁은 남의 일처럼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송금순(71) 할머니는 “북에 살 때 돌피를 훑어 먹으며 연명했다.”고 회상하다가 눈물을 쏟았다. ‘시누·올케 금순이’ 사연도 각별했다. 유금순(73), 김금순(64) 할머니는 각각 황해도 연안과 개풍이 고향. 유 할머니는 남한으로 피란 와 결혼했는데 알고 보니 북에서 왔다는 시누이 이름도 ‘금순’이었다.
시작은 무거웠지만 잔치는 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했다. 할머니들은 비슷한 운명의 다른 ‘금순 할매’들과 마주 앉아 오랜 벗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 찬 흥남 부두에~’. 할머니들의 주제가나 마찬가지인 노랫가락이 흘러나오자 분위기는 절정에 이르렀다. 노래 소감을 묻자 금순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답한다. “말도 마, 저 노래 때문에 어려서 얼마나 놀림받았는데…. 그래도 돌아보면 저 노래 들으며 힘을 얻은 것 같기도 해.”
8월23일까지 계속되는 ‘굳세어라, 금순아’ 전에서는 전쟁 당시 사용된 ‘삐라’, 전쟁용품 등을 만날 수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2010-06-23 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