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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줌인] 외국인 혐오증 위험수위… 안산 ‘국경 없는 마을’ 르포

[포토 다큐 줌인] 외국인 혐오증 위험수위… 안산 ‘국경 없는 마을’ 르포

입력 2012-05-04 00:00
업데이트 2012-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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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갔던 우리네 아버지 보는듯… “We are the One”

지난달 수원에서 조선족 오원춘의 여대생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조선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사건의 여파는 오씨 개인을 넘어 조선족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 전체로 퍼져 나갔고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현상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두려움의 대상이 된 이들에 대한 소문과 진실을 확인하러 외국인 노동자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을 찾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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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중앙역 앞에 서 있는 수코초(인도네시아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 젖어들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에 한국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 중앙역 앞에 서 있는 수코초(인도네시아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 사회에 젖어들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에 한국 사람들로 붐비는 번화가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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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코초가 인터넷을 통해 가족사진을 보고 있다.
수코초가 인터넷을 통해 가족사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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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간판이 즐비한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모습.
외국어 간판이 즐비한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의 모습.


근처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의 외국인근로자들이 늘어나면서 조성된 이 마을에는 안산시 단원구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3만 6000여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공단이 쉬는 일요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원곡동에서는 한국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자와 알 수 없는 외국어가 적힌 간판들 사이에서 오히려 한글 간판이 이국적으로 보였다. 여러 국적의 외국인들로 붐비는 거리에서는 두려움 섞인 이질감마저 느껴졌다. 한국인들에게 여전히 이방인으로 불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생활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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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마을의 한 담벼락에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외국인노동자를 구하는 광고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국경 없는 마을의 한 담벼락에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서 외국인노동자를 구하는 광고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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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의 설날기념 문화행사장에서 나이지리아에서 온 마이클(오른쪽)과 니와졸이 외국인 자원순찰대활동을 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설날기념 문화행사장에서 나이지리아에서 온 마이클(오른쪽)과 니와졸이 외국인 자원순찰대활동을 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설맞이 문화행사가 열린 안산시 화랑공원. 2000여명의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인파 속에서 녹색 조끼와 모자 차림의 외국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올해 3월 발족한 외국인자원순찰대다. 범죄예방과 외국인 정착지원 등 지역 내에서 감초 같은 역할을 하지만 이들에게 어떤 혜택도 주어지지 않는다. 순수한 자원봉사 활동이다. 나이지리아인 아군마두 마이클 오(46)에게 ‘순찰대 참여동기’를 묻자 “한국으로부터 많이 받았다. 다시 한국에 돌려줘야 한다.”며 서툰 한국말로 대답했다. 빙순호 안산단원경찰서 외사계장은 “일주일에 단 하루뿐인 휴일인데 열성적으로 순찰대에 참여하는 모습이 대견하다.”며 “체류심사 때 가산점 부여 같은 혜택이 주어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취재 중 알게 되어 방문한 인도네시아인 수코초(37)의 집. 그의 책상 위 달력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한국어 수업 일정과 자원봉사 일정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방 한쪽에 놓인 아동복에 호기심을 보이자 “우리 아기 선물”이라면서 가족에게 보낼 선물꾸러미를 풀어놓는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박지성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와 축구화를, 아내에겐 멋스러운 한국 스타일의 구두를 준비했단다. 수초코는 밝은 표정으로 선물 자랑을 하면서도 연신 옷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서 예전 중동에서 일하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며칠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 접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가족을 위해 타지에서 외롭게 돈을 벌고 있는 가장의 모습이 이들의 진짜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자신들의 꿈이 있는 한국 사회에 동화되고 한국인을 닮아가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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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대상의 태권도교실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율리(아래·인도네시아인).
외국인 대상의 태권도교실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율리(아래·인도네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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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본국(인도네시아) 아기 사진을 보여 주는 아궁의 환한 미소는 천생 아빠의 모습이다.
휴대전화 바탕화면에 깔려 있는 본국(인도네시아) 아기 사진을 보여 주는 아궁의 환한 미소는 천생 아빠의 모습이다.
2011년 안산 단원구의 범죄 발생 건수 총 1만 3670건 중 외국인 범죄는 458건으로 전체의 3.36%에 불과했다. 외국인 인구비율이 10%임을 감안하면 내국인보다 훨씬 낮은 사건 발생률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항상 의심과 두려움 섞인 눈총에 시달리고 있다. 안디옥 교회의 정상엽 목사는 “공단의 중소기업들은 외국인노동자 없이는 절대 가동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 경제에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면서 “과거 우리 해외파견 노동자들과 비슷한 이들에게 포용과 자비를 베풀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목의 문화공원 중앙에 놓인 커다란 돌 위에 ‘We are the One’(우리는 하나)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짧은 단 한 줄의 이 글이야말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 공간에 살고 있는 그들을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2012-05-04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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