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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2부) ③LH 멘토링·공부방 사업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2부) ③LH 멘토링·공부방 사업

입력 2013-02-21 00:00
업데이트 2013-02-2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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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만 하던 제가 언니들 만나 우등생 꿈꾼다니까요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 사는 박진주(15)양은 다음 달 서울 동산정보산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전문계고 입학이 뭐 그리 대단하냐 하겠지만 진주에겐 기적 같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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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LH 멘토와 꼬마친구’를 통해 자매가 된 한푸름(왼쪽)씨와 박건주(가운데)씨, 박진주양이 한강변에 소풍을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봄 ‘LH 멘토와 꼬마친구’를 통해 자매가 된 한푸름(왼쪽)씨와 박건주(가운데)씨, 박진주양이 한강변에 소풍을 나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에서 몇 등이냐고요? 에이, 뭐 그런 걸…그냥 뒤에서 세는 편이 빨랐다는 정도…. 지금은 그래도 중간은 하죠.” 진주는 밝은 목소리로 성적에 대해 ‘노코멘트’를 했다.

진주는 최근 1년간 세 가지가 바뀌었다. 변화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진행한 ‘LH 멘토와 꼬마친구’의 지원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진주는 처음엔 단순한 멘토링 사업인 줄 알았다. 하지만 LH가 소개해 준 것은 멘토가 아니라 언니였다. 멘토 박건주(21·서울여대 2학년)씨와 한푸름(23·서울여대 4학년)씨는 진주와 마음이 잘 맞았다. 그렇게 모인 이들은 지난 1년간 기적을 만들었다.

셋이 만든 첫 번째 기적은 밝아진 진주의 성격. 진주는 “친구들은 모두 학원 가고, 집에 오면 할머니밖에 없고…. 그냥 방에서 온라인 게임만 죽어라고 했죠”라고 털어놨다. 오락만 하다 보니 말수도 줄었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나가면 돈인 세상에 외출은 부담스러웠다. 수학 멘토 박씨는 “처음 만났을 때 정서적 안정을 찾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공부에 앞서 고민을 들어주면서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고교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멘토링 지원을 받기도 했었다. 셋은 한강으로 소풍 가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같이 사는 할머니가 서운해할 정도였다. 어느새 공격적이었던 진주의 말투는 부드러워졌고 이젠 오락보다 바깥나들이를 좋아하는 소녀로 바뀌었다.

두 번째 기적은 진주에게 생긴 자신감이다. LH가 박씨와 한씨 등 멘토들에게 각각 20만원의 비용을 지원했지만 활발한 세 자매가 돌아다니며 쓰기엔 넉넉지 않았다. 진주는 “한푸름 언니가 갑자기 천연 비누를 만들어 팔자고 하더라고요. 제가 손재주가 좋다면서…. 그런데 그걸로 얼마나 벌었는지 아세요. 10만원이 넘어요”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두 언니는 진주와 함께 천연 비누를 만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홍보했고 재료비 등을 빼고 남은 순수익만 10만원이 넘었다. 한씨는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진주가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자신감이 생기면서 없던 꿈도 생겼다. 바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다.

세 번째 기적은 진주의 고등학교 진학이다. 박씨는 “처음 진주의 학습 수준은 글자와 종이를 구분하는 정도였다”면서 “그래도 머리가 나쁘지 않고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있어 기초부터 가르쳤는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주가 희망한 고등학교는 내신이 상위 60~70% 정도여야 진학이 가능했다. 한씨는 “봄이 끝나 갈 무렵부터 집중적으로 공부를 시켰다. 게으름을 부릴 때는 따끔하게 혼도 냈는데 진주가 싫어하진 않았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두 언니가 공을 들인 덕인지 진주의 노력 덕분인지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10문제 중에 2~3개를 맞히던 수준에서 이제는 절반 이상을 맞힌다. 또 찍는 게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게 됐다”면서 “학교 선생님들도 잘한다고 칭찬을 해 주실 정도”라고 자랑했다. 으쓱해진 진주는 고등학교에서 우등생 소리를 듣는 것이 목표다. 철없는 소녀지만 진주는 멘토링 시스템이 고맙다. 진주는 “외롭게 지내던 내게 멘토링 시스템이 두 언니를 선물해 줘 너무 감사하다”면서 “다른 친구들도 이런 좋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주뿐만 아니라 ‘LH 멘토와 꼬마친구’는 오늘도 작은 기적을 만들고 있다. 강남 사교육 시장처럼 아이들을 몰아치기보다 아이들의 꿈을 존중한다. 시범적으로 진행되던 LH의 멘토링 사업은 2010년 이지송 사장이 취임하면서 본격화됐다. 현재 한양대, 서울여대 등 전국 17개 대학의 학점프로그램과 연계돼 203명의 멘티와 393명의 멘토가 참여하고 있다. LH 관계자는 “최소 6개월간 멘토-멘티 관계를 갖게 하고 워크숍과 정기교육을 통해 멘토들의 수준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멘토와 멘티가 서로 원할 경우 기간은 연장할 수 있다. 최근에는 김장이나 케이크 만들기 등의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LH 관계자는 “형식적 멘토-멘티가 아닌 친형제, 자매 같은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2013-02-21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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