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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불여일행] 노숙인을 위한 잡지 ‘빅이슈’ 판매원이 되다

[백문이불여일행] 노숙인을 위한 잡지 ‘빅이슈’ 판매원이 되다

김유민 기자
김유민 기자
입력 2015-10-12 16:15
업데이트 2015-12-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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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판매국에서 빅판 아저씨들의 환한 미소
영등포 판매국에서 빅판 아저씨들의 환한 미소
매달 1일,15일은 신간이 나온다. 판매하기 좋게 직접 포장을 한다.
매달 1일,15일은 신간이 나온다. 판매하기 좋게 직접 포장을 한다.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빅 이슈 코리아’ 판매국. 매달 15일은 신간이 나오는 날입니다. 빨간 조끼를 입은 판매원 아저씨들의 손길이 어느 때보다 바쁩니다. 이 곳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습니다.

“선생님, 몇 권 가져가실 거에요?”

“10권이면 될 것 같어. 지난번에 못 팔고 남은 것도 좀 있고 해서.”

아저씨의 낡은 허리쌕에서 꼬깃꼬깃 접힌 돈이 나옵니다. 많진 않지만, 지난주에 잡지를 팔고 남은 돈입니다. 빅이슈 한 권의 가격은 5000원. 그 중 절반인 2500원이 빅판 아저씨의 몫으로 돌아갑니다.

‘BIG ISSUE’라고 크게 적힌 빨간 모자와 조끼를 입고, 판매원증을 목에 거니 제법 실감이 납니다. 영등포구청역에서 회기역까지는 45분. 호기롭게 판매국을 나섰지만 지하철을 타니 움츠러듭니다. 담담하게 걸음을 옮기는 아저씨와 달리, 초보판매원은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직원들이 당부해준 판매수칙 10가지를 되새깁니다. 서울시와 지하철공사의 협조를 받아 협의된 지하철역과 거리에서만 판매를 합니다. 직접 다가가 판촉을 하는 건 안 됩니다. 미소를 잃지 않기, 술·담배를 하지 않기, 다른 것과 같이 판매하지 않기, 판매수익의 50% 저축하기. 홈리스(Homeless)였던 아저씨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꼭 지키고 있는 것들입니다.

길 위에서 6시간, 가장 힘들었던 건

회기역에는 경희대학교가 있어 유동인구가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평일 낮 두시의 거리는 한산하기만 합니다. 학생들이 많아 판매가 잘 되는 지역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걸 보고 놀랐습니다.

“방학 때는 (사람이) 정말 없어.” 미소만 지은 채 별 말씀이 없으시던 아저씨가 판매할 잡지를 차곡차곡 올려둡니다. 한 권을 집어 들고 아저씨와 열 발자국 떨어져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착한 잡지 빅 이슈입니다!” “빅 이슈 신간이 나왔습니다. 홈리스들의 자활을 돕는 잡지입니다!” “당신이 읽는 순간, 세상이 바뀝니다!”

한 시간에 한권 팔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관심도 견뎌내야 한다.
한 시간에 한권 팔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무관심도 견뎌내야 한다.


큰 소리로 외쳤다 생각했는데, 어째 소리가 주위에서만 맴돕니다. 쉬지 않고 외치는데 쳐다보는 이 하나 없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10명 중 1명 정도가 슬쩍 눈길을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춤이라도 추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무관심을 서 있는 내내 느낍니다. 빨간 조끼를 입은 투명인간이 된 기분. 아저씨에겐 익숙한 기분일겁니다.

학교 앞이라 그런지 수업이 마칠 시간엔 학생들이 우르르 지나갑니다. 최대한 큰 소리로 “안녕하십니까!” 외치지만 지나가는 학생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눈동자는 갈 곳을 잃습니다. “유민씨, 창피해요?” 함께 온 직원의 한 마디에 반사적으로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못내 느껴지는 창피함이 부끄럽습니다.

다들 처음 판매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내가 입고 있는 이 빨간 조끼는 빅이슈 판매원임을 나타내는 유니폼이기도 하지만, 한 때 길 위에서 생활했던 홈리스, 노숙인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하니까요.

같은 문구를 수천 번은 넘게 외치고 있는데, 문득 바로 앞 약국과 상점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항의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땐 자리를 옮겨서 판매를 한다고 합니다. 이날은 다행히 주변 상인들의 협조로 무사히 판매를 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품 가게 직원은 과자를 가지고 와 먹고 하라며 건네주었습니다. 저녁 무렵, 근처에서 폐지를 줍던 할머니는 “아가씨가 좋은 일하네. 이 아저씨 자식들 교육시킨다고 이렇게 매일 나와서 이거 해”라며 말없는 아저씨의 사연을 대신 전하고 가기도 했습니다.

“아저씨, 힘내세요.” 지나가던 여학생이 건넨 한 마디에, 덩달아 기운이 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건조한 시선과 무관심을 견디게 하는 건 바로 이럴 때였습니다. 아저씨는 환한 미소로 “감사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빅판 활동은 구걸이나 기부가 아닌 엄연한 경제활동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주었으면, 따뜻한 한 마디를 주고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쑤신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통증이 구석구석 느껴집니다. 이 순간, 앉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서있는 일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습니다. 평소 앉아있던 사무실 의자가 사무치게 그리워집니다. 아저씨는 비가 올 때도 눈이 올 때도 매일 같이 같은 자리에 서있습니다.

6시간 동안 아저씨와 함께 10권을 팔았습니다. 아저씨에게도 저에게도 값진 열권입니다. 1시간에 한 권 팔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평소에는 5권도 채 팔기 힘들다고 합니다. 묵묵히 책을 팔던 아저씨는 판매 중엔 농담도 잘 하지 않으셨지만, 내심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평소에는 쉬면서 하는데 제가 함께 하는 바람에 눈치가 보여서(?) 더 열심히 하셨다고 하네요. 해가 진 저녁. 텅 빈 수레가 이렇게 예뻐 보이긴 처음입니다. 아저씨는 내일도 같은 시간 판매국에 가서 신간을 사고, 예쁘게 포장할 겁니다.

■ 빅이슈 코리아

‘빅 이슈(BIG ISSUE)’는 잡지 이름이자 홈리스들을 위한 사업이기도 합니다. 1990년 영국에서 홈리스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단순히 숙식 제공이나 재활, 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당히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경제활동을 제안하는 사업입니다. 10여 개국에서 14종이 발행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 대만에 이어 3번째로 우리나라에도 발행되고 있습니다.

홈리스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일 뿐만 아니라 인식개선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홈리스 월드컵, 홈리스 발레단, 홈리스 밴드, 홈리스 합창단, 더빅스마트(스마트 폰 지원 및 교육 사업), 더빅드림(의류기증 사업), 민들레 예술 문학상(글쓰기 교육)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 재능기부. 후원. 정기구독 : www.bigissue.kr / 02-766-1135

○ 임대주택 입주자를 위한 중고물품 기부: 02- 2069-1135

백문이불여일행(百聞不如一行). 백번 듣고 보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 느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보고 듣는 것’ 말고 ‘해 보고’ 쓰고 싶어서 시작된 글. 일주일이란 시간동안 무엇을 해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나누고 이야기하고 싶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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