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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1] 굼벵이가 정말 약이 될까?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1] 굼벵이가 정말 약이 될까?

입력 2015-10-25 14:53
업데이트 2016-06-1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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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그런 곤충을 미래의 식량자원으로 이해하는 세상입니다. 보기와 달리 맛이 괜찮고, 영양분이 풍부한 것은 물론 키워내기가 쉬워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 배경입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니 한 고등학생이 애완동물의 먹잇감으로 사온 밀웜을 맛있게 먹는 걸 보고 경악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정말이지 지금은 모든 것에서 가능성을 찾는 세상인 듯 합니다.
 곤충을 미래의 식량자원으로 여긴다지만, 우리의 곤충 식용 역사를 보면 오래 전부터 그 가능성을 예견했던 게 아니었을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게 메뚜기이겠지요. 시골에서 자랐다면 늦가을에 살이 오른 벼메뚜기며 풀무치를 잡아 구워 먹었던 추억이 남아있을텐데, 보기와 달리 구수한 게 맛이 괜찮았지요. 그래서인지 요즘도 술안주로 메뚜기를 내는 술집도 있더군요. 누에 번데기야 말할 것도 없고, 야생 말벌을 잡아 약술을 만들기도 하지요. 이처럼 식용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입꺼리나 약용으로 곤충을 활용한 사례는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주목받는 게 바로 매미의 유충인 굼벵이였습니다. 사전적으로 굼벵이는 모든 곤충의 유충을 뜻하지만, 우리의 생활 영역에서 주목을 받았던 유충은 바로 그 메미 유충입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농가에서는 굼벵이 보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고구마를 캐기 위해 밭이랑을 헤집을라치면 굼벵이란 놈이 몸통을 둥글게 말고서 흙의 속살 사이에서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이게 멀쩡한 고구마에 생채기를 내는 탓에 반가울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큰 해악을 끼치지도 않아 이걸 애써 없애지도 않고, 그냥들 지나쳤지요.
 

 ●우리의 집지킴이였던 굼벵이
 흔히 집지킴이라면 초가집 서까래 틈새에 숨어 사는 구렁이를 떠올립니다. 바싹 마른 이엉 속에서 뭘 먹고 사는지는 모르지만, 살긴 살았고, 더러는 이 놈이 한밤에 몰래 서까래를 타고 가다가 마룻장 위로 툭, 떨어지기라도 할 양이면 모두들 혼이 빠지게 놀라 나자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쩝니까. 그게 집을 지킨다는데, 막대기로 후려쳐 내다 버릴 수도 없는 일이니 부지깽이로 걷어다가 고이 지붕 위에 얹어줄 밖에요.
 하지만, 그런 구렁이가 집집마다 사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의 유전자 속에 원시 정령신앙의 잔재가 남아 구렁이를 용(龍)의 전신 쯤으로 여겨 영물화한 것일 뿐인데, 사람과 가깝게 있고, 집집마다 없지 않은 걸 기준으로 치자면 구렁이 대신 굼벵이를 집지킴이로 삼아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요. 온 마을이 죄다 초가집이고, 간혹 있는 와가라도 부속채 한두 동은 초가였으니 굼벵이 없는 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음력 시월, 늦어도 동짓달이면 벼베기가 끝나 단을 지어둔 볏짚이 바싹 마르는데, 그 때부터 농가에서는 삭아빠진 초가지붕을 덮을 이엉을 엮느라 분주합니다. 묵은 이엉을 걷어내고 새 이엉을 얹는 방식이지요.
 이엉을 얹는 날이면 힘꼴 깨나 쓰는 장정들이 이른 아침부터 초가지붕을 타고 올라가 묵은 이엉을 걷어냅니다. 그 때, 걷어낸 이엉 속에 허옇게 널린 게 바로 굼벵이였습니다.
 초가라도 집채가 작으면 아낙들이 주섬주섬 굼벵이 주워 모았다가 장날 한약방에 건네거나 볶아서 약 대용으로 쓰곤 했지만, 집채가 크고 두, 세 해 묵은 지붕을 바꾸는 날이면 어떻게 알았는지 읍내 한약방 주인이 먼저 와서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고는 삭은 이엉 속에서 굼벵이를 죄다 찾아내 동이에 담아가곤 했지요. 그게 보약이 되는지, 보신이 되는지는 몰라도 힘들게 지붕 이는 날, 굼벵이 주워섬기는 일이 걸리적거리기도 했지만, 막걸리 몇 되 건네는 맛에 아무도 그걸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오랫 동안 형성된 동서양의 문화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동질성을 갖게 되었는 지는 몰라도, 틀림없는 것은 내력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가 서양은 물론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태를 잘 아는 메뚜기나 번데기는 먹었으면서, 그것 못지 않게 가깝게 서식하는 굼벵이는 먹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지요.
 그런 굼벵이를 한약방 주인이 걷어가는 것에서 보듯 굼벵이는 식용이 아닌 약재였습니다. 요즘도 약용으로 기른 양식 굼벵이를 기호대로 볶거나 달여서 공급하는 업체가 많은데, 그들이 내세우는 효능을 보자면 누구라도 혹하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천연 ‘프로틴 바’ 굼벵이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헤리스는 그의 저서 ‘음식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전쟁의 기원을 단백질 쟁탈전이라고 규정하지요.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는 제쳐두고, 굼벵이 등 곤충의 약용이나 식용 배경이 하나 같이 ‘양질의 풍부한 단백질’이라는 점은 우리 조상들이 가진 혜안이자 지혜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 시절에 단백질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런 걸 복용하니 사람이 제 꼴을 찾더라는 나름의 확신을 가졌으니까요.
 굼벵이는 생김새가 통통한 누에 같습니다. 다르다면 누에는 바지런히 움직여 배를 채우지만, 굼벵이는 몸통을 말아 웅크린 채 매우 굼뜨게 움직인다는 것 정도이지요.
 동의보감 등에 따르면, 간에서 비롯되는 질병에 이게 좋은 약이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간에 좋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된 사실도 아니고, 또 일부 업자들은 간경화, 간염은 물론 간암에까지 좋다고 선전을 해대지만, 오로지 그것만으로 병을 치료했다는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굼벵이를 섭취하게 했더니 염증 등으로 손상된 간세포가 일정 수준 복구되었다는 실험 결과가 있다고는 하더군요. 그 실험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진행됐는 지를 모르는 까닭에 유효성을 장담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떻든 굼벵이를 먹으면 간에 좋다는 것이고, 검증을 해보니 굼벵이의 특정 성분이 괴사된 간세포의 손상을 일정 부분 복구시킨다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중풍, 심장병, 당뇨는 물론 파상풍, 신부전, 알츠하이머 치매의 원인물질인 ‘BACE-1’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고 주장하는 축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가히 기적의 생약 제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만,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는 필자도 모르겠습니다.
 추측컨대, 굼벵이는 양질의 단백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모든 유충들이 그렇듯 굼벵이 역시 축축하고 음습한 곳에서 오랜 기간 생존하고 서식하기 위해 자신만의 고유한 면역체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굼벵이가 가진 양질의 단백질에 주목해 대체 식량자원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이런 점을 생각하면 얼마 전 개봉한 봉준호 영화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 등 곤충으로 만들어 연명 수단으로 삼았던 프로틴 바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건 당장의 얘기는 아니고, 미래에도 굼벵이의 식용 문제가 어떻게 풀릴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동의보감 탕액(湯液)편의 기록을 조금 더 볼까요. 금벵이는 성질이 약간 차고, 맛이 짜며, 독성이 있다. 악혈(惡血), 어혈(瘀血), 비기(痺氣), 눈에 생긴 군살, 백막(白膜), 뼈가 부러지거나 삔데, 쇠붙이에 다쳐 속이 막힌 것을 치료하고 젖이 잘 나오게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굼벵이가 암에도 특효인 것처럼 선전하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는 듯 합니다. 나쁜 피라는 뜻의 악혈과 뭉쳐서 응어리진 피라는 뜻의 어혈을 없앤다는 것인데, 이걸 검증 없이 암의 치료와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며, 이에 대한 어떤 근거나 검증도 없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인 만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활용 가능성 과학적으로 살펴야
 훌러덩 벗겨낸 지붕 위에 새 이엉을 얹고 난 뒤, 부산물로 남은 굼벵이를 주워 모아 잉걸불에 달군 가마솥에 넣고 바삭하게 볶습니다. 이 일은 할머니의 몫이었는데, 살아 있는 ‘벌거지’를 단 가마솥에서 볶는 모습이 보기에 좀 그래서 딴전을 부리고 있자면 오래잖아 마치 고기 산적을 굽는 것처럼 고소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 퍼지곤 했습니다.
 어찌 됐나 싶어 다가가 보니 굼벵이가 솥안에서 거무튀튀하게 볶여 있습니다. 할머니는 그걸 거둬 절구에 넣고 곱게 빻아서 잘 갈무리하십니다. 그 뒤, 할머니가 굼벵이 분말을 어떻게 사용했는 지는 알지 못합니다. 아마 술 좋아 하셨던 아버지에게 “이거 간에 좋다니 먹어라”시며 한 웅큼씩 건네지 않았을까 생각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저 양반 낯빛이 왜 저리 먹창호지 같지. 굼벵이를 좀 볶아 먹여야 하나”라거나 “그런 데는 굼벵이를 구해서 볶아 먹이면 좋대”라는 말 여기 저기서 쉽게 들었고, 그렇게 굼벵이 수발을 한 뒤에는 “그걸 먹더니 얼굴이 좋아졌다”거나 “굼벵이 구해서 구완 했는데도 저러니 애가 타지”라며 굼벵이 효능에 대한 구설의 검증이 이어지곤 했으니, 확실한 것은 그게 약이 되든, 안 되든 굼벵이에 대한 약리적인 믿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굼벵이를 약용으로 삼았던 우리의 재래 민간의학이 전래되는 한의학과 어떻게 같고, 다른 지는 차치하고, 이제는 그런 굼벵이의 약리성을 검증해 활용의 여지를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우리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린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메티신을 찾아낸 중국의 여성 약리학자 투유유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자 모두가 의외라는 반응들이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일본의 오무라 박사는 사상충 구제에 쓰이는 약물을 개발한 지 30여년 만에 노벨상을 받아 눈길을 끌기도 했지요.
 그러자 국내에서는 “우리는 언제 한번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하며 시샘 섞인 제언들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마치 문화혁명기의 중국이 봉건 잔재라며 전통과 관습을 깡그리 소각·폐기하고 나중에 뉘우쳤듯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들을 ‘버려야 할 구닥다리’로만 취급하지나 않았는지 다시 되돌아 볼 일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투유유나 오무라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천착한 대상이 모두들 ‘이제는 쓸모가 없다’고 여겼던, 그래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고 폐기해버렸던 바로 그 ‘구닥다리 전통과 관습’이었다는 점이겠지요.
 의학과 제약도 그렇습니다. 최근 들어서 이런 저런 시도의 결과들이 드물게 나오고는 있지만, 의학 분야의 경우 기초 연구가 취약해 연계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중요한 연구 성과가 다음 단계의 진전된 연구로 이어지지 않고 사장되는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한의학도 그렇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동의보감만 앞세울 것인지 답답합니다. 그보다 나은 세상이고, 그 때보다 좋은 환경인 데도 우리의 한의학이 허준의 동의보감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돼 있다면, 이보다 딱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약 분야라고 다를 게 없습니다. 국내 제약사들의 R&D(연구 개발) 비용을 전부 합해봐야 다국적 제약사 한 곳의 연구개발비 규모에도 못 미치는 현실, 그래서 허구헌날 다국적 제약사의 제품을 베끼거나 턱 괴고 특허 만료나 기다리는 실정임에도 노벨상을 우리는 왜 못 받느냐며 투정 부리는 모습을 보자면 공허하다 못해 황당하달 수밖에요.
 제가 소싯적의 굼벵이에 관한 기억을 되살려 봤지만,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업소 광고에 이걸 복사해 붙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필자의 견해를 정설인 양 이리 저리 오려붙여 돈벌이에 악용할까 봐서 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는 굼벵이가 약리적 관점에서 정말 좋은 지를 알지 못하며, 혹은 어떤 독성을 가졌는 지도 모릅니다. 단, 우리 선조들이 굼벵이를 민간요법의 일부로 여겨 요긴하게 활용했던 것은 사실이니, 지금이라도 그 근거를 과학적으로 확인하고 검증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과먹고 볶아먹는 게 정말 유효한지, 그게 아니라면 그걸 어떻게 가공하고, 어떻게 복용해야 굼벵이가 가진 독성의 피해를 입지 않고,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는 지를 알아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굼벵이처럼 굼뜨고, 더디게 가더라도 가닥을 잡아 한 가지씩 명확성을 부여하다 보면 거기에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대박 블록버스터가 탄생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효능도 없는데 몬도가네식으로 곤충을 잡아먹는 미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쁠 게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례가 어디 굼벵이 뿐이겠습니까. 필자나 여러분의 뇌리에 각인된 어렸을 적 기억이 단순한 기억의 편린이 아니라 실은 놀라운 지혜의 소산이어서 ‘훌륭한 유산’으로 다음 대에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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