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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3]= 다슬기는 정말로 약이 될까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3]= 다슬기는 정말로 약이 될까

입력 2015-11-11 10:33
업데이트 2016-06-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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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살얼음이 내려앉기는 좀 이른 시기입니다. 산골짜기를 타고 내린 계곡물이 큰 강으로 합류하기 전에 바위와 자갈이 깔린 널찍한 ‘자드락둠벙’에서 가쁜 숨을 고르는데, 학교 수업이 끝난 오후가 되면 이곳에서 아이들 소리가 왁자하곤 했습니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손을 보탭니다. 바지춤을 대충 걷어올리고 얕은 물속을 더듬으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더듬거리며 뭔가를 거둬 모으는데, 가만 보니 다슬기입니다. 아마 저녁 식탁에 다슬기 아욱국이라도 올릴 모양입니다. 어디 아욱 뿐인가요. 부추 넣고 말갛게 끓여낸 다슬기 부추국도 술국으로는 일품이고, 된장을 엷게 풀어 끓이면 깔끔하고 구수한 맛이 비할 데 없습니다.
 별 품을 들이지 않아도 물가에만 나가면 지천에 널린 다슬기를 짬나면 몇 줌씩 거둬다가 끓여먹곤 했는데, 이름도 많습니다. 서울 경기에서는 다슬기라고 부르지만, 충청도 어름에서는 올갱이, 전라도에 가면 물비틀이·대사리, 경상도 사람들은 고둥이라고 했고, 강원도에서는 꼴부리라고 부릅니다.
 그 다슬기가 언제부턴가 ‘간에 좋은 약’으로 둔갑했습니다. 국거리 삼아 먹는 건 성에 차지 않는지 아예 다슬기로 즙을 내어 팔기도 하더군요. 허리가 뻐근하도록 찬찬히 물속을 들여다보며 하나씩 건져올려 겨우 한 사발쯤 모이면 별미 반찬으로 만들어 먹던 것인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다슬기를, 어떻게 모아 즙까지 내는지 ‘참, 재주 용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신통한 것은, 예전에야 텃밭에서 자란 아욱닢이 먹을만 하면 애들 등떠밀어서 거둬다가 겨우 찬거리로 썼던 다슬기가 어느 새 약용으로 대량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은 다슬기도 양식을 한다니 물 맑은 하천 생태계를 지킨다는 점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따져보면,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전통적으로 ‘치료를 위한 약과 먹는 음식은 근원이 같다’는 인식을 갖고 살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근원에서 만들어낸 그것이 약이든, 음식이든 가사(家事)나 가용(家用)의 범주를 벗어나 사고 파는 일이라면 생각을 조금은 달리할 필요가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술이라는 게, 꼭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도 효능을 턱없이 부풀리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까닭에 단순한 상술에 현혹돼 별미 수준의 먹거리를 특별한 치료 효과가 있는 약으로 여긴다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훨씬 크고 많을 수 있다는 점을 각별히 경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백질 그리고 아미노산
 다슬기의 효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시력을 보호하고, 콩팥에 좋아 소변이 잘 나오게 하며, 아미노산이 풍부해 간 기능 회복을 돕고, 숙취 해소에도 도움을 준답니다.
 정말 그럴까 싶어 다슬기의 영양 성분을 살펴봤습니다. 조사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나트륨(각 100g 기준)380mg, 단백질 24mg, 엽산 5.5mg, 인 85mg, 칼륨 160mg, 칼슘 137mg, 콜레스테롤 65g, 회분 2.5mg, 니아신 1.8mg, 비타민 B2 0.23mg, 비타민 B6 0.3mg, 비타민 E 0.13mg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아미노산(amino acid)으로 구성되는 단백질에 주목합니다. 다슬기에 포함된 단백질의 양이야 한 끼 고기만 먹어도 충족되는 양이지만, 일부의 주장처럼 특정 아니노산이 많다면, 아미노산의 정체를 우선 살피는 게 바람직하겠지요.
 단백질을 구성하는 유기화합물인 아미노산은 22종이나 되는데, 이 가운데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아 반드시 음식으로 섭취해야만 하는 것을 ‘필수 아미노산’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필수 아미노산은 성장기와 성인기에 따라 필요한 종류가 조금씩 다른데, 성인은 이소류신·류신·페닐알라닌·리신·메티오닌·트레오닌·트립토판·발린 등 8종이, 성장기 청소년이나 환자는 여기에 히스티딘을 포함시키는 게 일반적인 분류입니다.
 문제는 체내에서 단백질을 만들 때에는 모든 아미노산이 필요하며, 이 때 한 종류라도 결핍되면 인체의 단백질 합성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식물성 단백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종류의 아미노산을 가진 것은 동물성 단백질이지만, 오로지 동물성만으로는 체내 단백질 합성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 필요한 아미노산을 동물성 단백질로만 채우려면 불가피하게 지방 등을 과다섭취하기 쉬워 붉은 살코기의 과다섭취에 따른 부작용도 걱정이 됩니다. 요즘 사람들은 아무래도 육류를 자주 그리고 많이 먹으니까요.
 이런 문제 때문인지 의약품 말고도 아미노산 이름을 붙인 건강식품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아미노산이 필요한지 따질 겨를도 없이 무조건 좋다고만 여겨 이것 저것 사서 복용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습니다. 하기야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 관련 제품 또한 그렇게 많겠지요.
 항상 하는 얘기이지만, 이게 어디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먹는 건 그것이 약이든, 건강보조식품이든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또 요즘 같은 세상에 특별히 영양 불균형 상태이거나 특정 기저질환자가 아니라면 아미노산 제제나 보조식품을 따로 사용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자칫 절 모르고 시주하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아시겠지만, 아미노산은 단백질 분자의 가장 기본적인 조성 물질인데, 단백질을 섭취해 위장관을 지나면서 소화·분해 과정을 거치면 아미노산이 되며, 이 아미노산이 바로 체내 생체조직을 만들기도 하고 또 에너지원으로도 활용됩니다. 이게 에너지원으로 쓰일 때는 g당 약 4Kcal의 열량이 되며, 생체조직에 활용될 경우에는 피와 뼈, 근육과 살, 신경 및 뇌세포와 수많은 호르몬, 백혈구, 임파구, 효소, 항체, 핵산(DNA)까지 범위를 특정하기도 어려울만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작용하지요.
 
 ●술과 다슬기 그리고 아미노산
 1806년에 아미노산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20종이 보고되어 오다가 1986년 셀레노시스테인이 발견되었고, 가장 최근에는 2002년에야 22번째 아미노산의 정체가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지에 발표돼 모두 22종이 되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새로운 아미노산이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만, 지금까지는 이게 전부입니다.
 이런 아미노산은 앞서 거론한 것처럼 체내에서 뼈와 살과 근육의 원료가 되고, 활동에너지를 생산하며, 인체조직의 생성과 재생 그리고 대사활동의 촉매로도 작용합니다. 단백질의 역할이 이처럼 다양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의과학계에서는 단백질을 두고 ‘생명의 기반’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앞으로 단백질이라는 영양소 하나에서 숱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장담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게 이 단백질이 체내에서 순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암의 발병에 관여하는가 하면 신경계와도 밀접해 치매나 알츠하이머의 연구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부에 자리를 잡고 있거든요. 생명활동에 중요하다는 뇌도 대부분이 단백질 성분으로 이뤄져 있지 않습니까.
 과음 후에 다슬기국으로 속을 푸는 것도 다슬기가 가진 아미노산이 술독을 풀어내느라 지친 간을 달래 활력을 되찾게 해 준다는 믿음 때문이겠지요. 숙취 원인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능력을 측정했더니 다슬기가 재첩보다 빠르고, 탁월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는 다슬기에 들어있는 아미노산 성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실제 다슬기에는 아스파르트산, 글루타민산, 글리신, 류신, 리신, 아르기닌 등이 상당량 들어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해장이라는 게 이런 저런 영양을 따지기보다는 술을 많이 들이킨 탓에 잔뜩 긴장해 있는 위를 따뜻한 국물로 풀어주고, 과음 후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수분 부족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건더기 보다는 국물을 마시는 쪽으로 자리를 잡은 것인데, 그렇다고 보면 다슬기국만한 해장국도 흔치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다양한 아미노산까지 더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겠지요.
 
 ●속풀이 이상의 효능 기대해도 될까
 동의보감에도 다슬기는 ‘반위와 위냉증 및 위통과 소화불량을 치료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동의보감의 기록은 ‘다슬기가 간에 좋다’는 세간의 강한 통설과는 좀 다른 얘기입니다. ‘반위’만 해도 그렇습니다. 반위(反胃)란 위가 뒤집혀 음식만 먹으면 토해내는 증상으로, 의료계에서는 여기에 해당하는 질병으로 먼저 진행성 위암을 꼽습니다. 하지만 비숫한 증상을 보이는 질병이 위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문협착증이나 식도협착증, 췌장암이나 췌장염, 간암 등의 질환도 토하는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걸 곧이곧대로 믿어 암이나 협착증 같은 중병을 가진 사람이 가만 앉아서 다슬기만 먹고 있다면 난감한 일이지요.
 다슬기를 특정 질환을 치료할 목적으로 먹는 우매한 선택만 아니라면, 그걸 먹어서 간이나 위에 좋으면 좋은 일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몸에 해로울 일은 없으니 맛나게만 먹는다면 거기에 또한 도락의 기쁨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실, 하천에 사람들이 몰려 다슬기를 채취하는 관경을 보며 ‘예전처럼 궁한 세상도 아닌데 왜들 저럴까’하는 마뜩찮은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물속에다 시선을 박고 다슬기를 더듬는 모습에서 굶주리고 살았던 옛날의 아픈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하찮은 다슬기라도 자연생태의 일부인데 저렇게 쓸어내면 또다른 생태 교란이 유발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다슬기를 별미로 즐기는 식도락 문화가 확산되면서 대량생산을 위한 양식 기술도 함께 개발되었다는 점입니다. 양식을 하면서 더는 하천이나 강에 서식하는 다슬기를 ‘모양 사납게’ 싹쓸이 하지 않아도 되니 다행한 일이지요. 그 마을 사람이, 그 마을 하천에서 한, 두 줌씩 거둬먹는 일이야 어떨까만, 물놀이랍시고 하천에만 가면 물 속에 얼굴을 디밀고 다슬기 쓸어담는 일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특히나 다슬기를 약으로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간이나 위가 나빠 전문의의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누군가가 국으로, 무침으로, 즙으로 오로지 다슬기만 먹고 있다면 당장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물론, 아직 다슬기를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인 연구가 부족해 이 단계에서 다슬기의 치료 성과를 논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기 때문에 다슬기는 아직도 단순한 먹거리일 뿐이며, 어떤 치료 효과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다슬기, 좋지만 치료제 아닌 식품
 거둬온 다슬기를 대야에 담아 해감을 빼낸 뒤 삶아서 몸통을 빼내는 게 일입니다만, 귀찮을지언정 힘든 일은 아니니 다 좋습니다. 그런 뒤 된장 엷게 풀어서 푸릇하게 끓여내면 쫀득하게 씹히는 맛도 그렇지만 시원한 국물이 일품입니다. 여기에 함께 끓인 아욱의 보드란 식감과 숭숭 썰어넣은 부추의 맵싸한 맛까지 더해지면 밥 한 사발 뚝딱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었지요.
 다슬기 아욱국을 먹고 나면 속이 참 편했습니다. 고깃국 먹고 난 뒤의 누리거나 느끼한 뒷맛도 없고, 푸성귀만 먹은 뒤의 허전함도 없습니다. ‘물에것’이라고는 하나 비리지도 않고, 게다가 약효는 몰라도 몸에 나쁠 일 없으니 뒷탈 걱정없는 맞춤한 먹거리이기도 하지요.
 가끔 서울 밖으로 나가보면 ‘다슬기’나 ‘올갱이’라는 간판을 붙인 음식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슬기란 걸 살펴보면, ‘알갱이’래야 고작 잘 퍼진 밥풀떼기만 한데, 굳이 그걸 거둬먹었던 우리 섭생문화의 저변에 깔린 의식이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걸 약 삼아 먹기 시작했다면 ‘세상에는 병과 약이 함께 있다’는 우리의 전통 의약관을 설명하는 하나의 증좌가 되겠지요. 그게 아니라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다면 실정(失政)과 탐학에 지친 민초들이 죽지 못해 그것이라도 거둬먹어야 했던 신물나는 삶의 유흔일 것입니다. 그도 저도 아니라 계절마다 즐기는 식도락의 일부로 여겼다면, 팥알만 한 다슬기 하나에서도 일상적인 것과는 조금 다른 소박한 이질(異質)의 도락을 찾고, 거기에서 삶의 활력을 얻고자 했던 지혜의 소산일 수 있습니다.
 다슬기는 담수에서 서식하는 패각을 가진 연체동물입니다. 서식 환경이나 형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다른 동식물이 가지지 못한 아미노산이나 미네랄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다슬기라서가 아니라 모든 동식물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특성이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문어에는 타우린이 많고, 봄나물인 냉이에는 비타민 A·B·C류가 듬뿍 들어있고, 쇠고기 등 육류에는 단백질과 지방이 많듯이 말이지요.
 인간은 이런 개별 특정 성분에 주목해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아세트산으로 아스피린을 만들었고, 푸른곰팡이로 페니실린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다슬기 역시 치료약 개발의 원천으로 여기지 말아야 할 근거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는 아무 것도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다슬기는 제철에 별미 삼아 먹는 식품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진=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리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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