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서동철 칼럼] 백제 역사도시, 경주는 모델이 아니다

[서동철 칼럼] 백제 역사도시, 경주는 모델이 아니다

서동철 기자
서동철 기자
입력 2015-12-16 23:06
업데이트 2015-12-17 00:2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서동철 논설위원
서동철 논설위원
문화유산의 운명은 뜻밖에 정치권력의 향배와 매우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출향 인사가 가진 정치권력이 커질수록 해당 지역의 개발 압력은 높아지게 마련인데, 안타깝게도 문화유산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도로를 넓히고 산업단지가 들어서게 되면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도 팽창한다. 이 과정에서 매장 문화재부터 훼손된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신라 천년의 고도(古都)라는 경주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곳은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유산의 관광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부작용이 더해지기도 한다.

‘만년 2인자’ 김종필(JP) 전 국무총리의 고향인 부여는 이런 압력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었다. 1인자에 올랐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얼마 전 JP의 부여 방문 소식이 지역 신문에 실렸다.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다. 그는 과거 자신이 추진한 백제권 개발사업을 상기시키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자 주변에서 “부여에만 다 해놓아 관광객들이 다 그리 간다”고 농담을 했다는 것이다.

JP가 언젠가 털어놓았다는 ‘2인자론(論)’은 ‘절대로 1인자를 넘겨다 보지 말라’는 것과 ‘조금도 의심받을 일은 하지 말라’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JP는 부여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부여에만 다 해놓았다”는 덕담에도 불구하고 정작 부여에서는 “JP가 고향에 해준 것은 백마강 다리 하나뿐”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신라의 수도 경주가 그동안 빠르게 개발됐음에도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는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불만의 표출이다. 하지만 지금은 마땅치 않을 그 ‘개발되지 않은 낙후함’이 오히려 가장 역사도시다운 역사도시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지난 7월 백제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이후 공주·부여·익산은 들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교통·숙박·음식 등 관련 산업이 어느 때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지역 사회에서는 새로운 볼거리를 늘리고 주변 지역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실제로 곳곳에서 발굴조사가 벌어지고 있다. 등재를 신청하기에 앞서 발굴 예산을 늘려 놓은 데다 등재 이후에는 더욱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주에서는 공산성 발굴에서 며칠 전 백제사다리가 완전한 모습으로 출토되어 화제를 모았고, 중요한 유물이 쏟아진 수촌리 고분군의 추가 발굴에도 시동이 걸렸다.

부여에서는 사비시대 왕궁 터로 추정하는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그리고 사비성의 외성인 나성의 발굴조사가 연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백제 왕족의 무덤이 추가 확인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능산리 고분군 주변 구릉지에 대한 발굴조사도 시작된다. 부여시내에서 떨어진 은산 금강사 터도 중장기적인 정밀조사에 앞서 시굴조사에 들어간다. 익산에서도 왕궁리 발굴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립익산박물관 건립이라는 희소식이 들렸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경주의 전철을 밟아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경주의 오늘이 바람직스러운 역사도시의 모습이라고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후발 주자가 갖는 장점은 말할 것도 없이 앞서간 이들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회피하거나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지금은 경주 개발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경주가 아니라 인사동, 삼청동, 북촌이 자생적으로 거대한 전통문화지구를 이룬 서울이나 한옥마을을 전국적인 명소로 만든 전주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낫다.

진정성 있는 역사도시일수록 부가가치는 높아진다. 개발이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래로 갈수록 더 큰 황금알을 낳을 진정성 있는 문화 자원을 섣부른 개발로 퇴색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고 있는 백제 역사도시 가꾸기에 중앙정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 유적도시를 개발 압력에서 보호하는 신도시가 필요하더라도 지자체 차원에서는 추진하기 어렵다.

논설위원
2015-12-17 31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