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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세상 속 수학] 음모론의 마력에 대응하기

[박형주 세상 속 수학] 음모론의 마력에 대응하기

입력 2016-08-09 22:54
업데이트 2016-08-0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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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는 런던을 폭격하면서 학교와 병원도 폭격했다. 런던을 골고루 폭격한 게 아니라 일부 지역에 폭격이 집중된 것으로 보였다. 나치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특정 지역에 공격을 집중했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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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박형주 아주대 석좌교수
정말 나치의 폭격은 잘 계산된 패턴을 가지고 이루어졌을까. 폭격기들이 런던 상공에서 무작위로 폭탄을 투하하는데, 어떻게 일부 지역은 누락되고 특정 지역엔 반복해서 폭탄이 투하되겠는가. 영국군의 비밀 본부가 학교 옆에 숨어 있었다거나 요인이 병원에 입원했었다거나 하는 설로 이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원래 음모론은 이래서 끝이 없다. 폭격이 집중된 일부 지역을 보여 주며 그럴듯한 설명까지 곁들이면 대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사람들은 무작위성과 고른 분포를 혼동하고, 분포가 고르지 않으면 어떤 의도의 개입을 의심한다. 의심은 항상 음모론의 비옥한 온상이 된다.

결국 고승의 선문답 같은 질문에 다다른다. 무작위성이란 무엇인가. 의도의 개입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가. 다행히도 이런 선문답에는 수학적인 답이 있다. 먼저 깨닫는 한 가지는, 무작위의 반대는 ‘의도의 개입’, 즉 질서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상식에 반하겠지만, 폭격이 골고루 이루어지기 위해선 고도의 의사 결정과 실행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나치 폭격의 경우에는 지역별로 몇 번의 폭격을 받았는지를 기록해서 히스토그램이라는 통계적 표만 만들어 봐도 이 분포가 무작위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다. 무작위성을 테스트하는 더 세련된 수학적 방식들도 있다.

현대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몇 가지를 고르라면 그중에 ‘무작위성’이 꼭 들어가지 않을까. 당장 천재 기사 이세돌과 승부한 알파고도 무작위성에 기반을 둔 몬테카를로 검색법이라는 걸 사용했다. 상대방의 수에 대응해 다음 수를 특정 위치에 두었다 하자. 그로 인한 후속 시나리오들이 엄청 많은데 그중에 이기는 경우와 지는 경우를 다 세면 내가 선택한 특정 위치의 승리 확률을 알 수 있어서 승리 가능성이 큰 수에 착점하면 된다. 문제는 비교해 봐야 하는 시나리오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도 많아서 계산 불가의 영역이 된다는 것이다. 이 수를 줄이기 위해 무작위로 추출한 일부 시나리오만 사용하는 게 몬테카를로 방식이다. 만약 해커가 알파고에 침입해 무작위 선정 부분을 특정 방식의 의도적 선정 방식으로 바꾸면 어떨까. 알파고는 최적수가 아닌 엉뚱한 곳에 두게 되고, 물론 게임에서 ‘망하게’ 된다.

나치가 어떤 패턴을 가지고 폭격했다면 영국군에서 다음 폭격지를 미리 예상할 가능성이 크다. 스파이가 적국에 침투해 폭격 정보를 알아내더라도 그 가치는 높지 않다. 즉 질서와 패턴은 정보의 가치를 낮춘다. 이 정보량을 정보 엔트로피라고 한다. 무작위하게 폭격하는 경우라면 다르다. 스파이가 다음 폭격 지역을 알아내면 미리 주민을 대피시키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된다. 정보의 가치, 즉 엔트로피가 높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무작위성은 정보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무 의미 없는 정보와 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는 그 가치가 분명히 다른 것이다. 클로드 섀넌은 이걸 수학적으로 체계화해 정보 엔트로피의 개념을 도입했고,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서 현대정보이론의 아버지로 불린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음모론이 확산되곤 한다. 수학적 분석으로 대응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2016-08-1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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