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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 기자의 미술관기행]르네상스 조각예술의 진수 품은 피렌체 바르젤로 국립미술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기행]르네상스 조각예술의 진수 품은 피렌체 바르젤로 국립미술관

함혜리 기자
입력 2016-10-26 17:24
업데이트 2016-10-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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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아름다운 바르젤로 미술관 안뜰. 육중한 돌계단이 있는 벽면에는 피렌체 유명 가문의 문장들이 걸려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바르젤로 미술관 안뜰. 육중한 돌계단이 있는 벽면에는 피렌체 유명 가문의 문장들이 걸려있다.
 문예부흥의 발흥지 피렌체에서 꽃피었던 르네상스 예술은 회화와 조각작품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회화의 걸작들을 우피치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면 르네상스 거장들의 조각 작품은 바르젤로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미켈란젤로의 ‘브루투스’와 ‘다비드-아폴로’, 도나텔로의 ‘성 게오르기우스’와 ‘다비드’, 베로키오의 ‘다비드’ 등 르네상스 대가들의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다. 상아 세공품, 성구, 도자기, 갑옷, 무기 등도 있지만 조각들에 비할 바가 안 된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조각과 공예 작품을 모아 놓은 국립 바르젤로 미술관은 1865년 단테 탄생 600돌을 기념해 문을 열였다. 미술관 건물은 1255년 시 참사회 대표의 궁으로 지어졌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를 통치했을 당시엔 행정장관의 관서(바르젤로, Bargello)로 쓰이다가 16세기부터 경찰청사 겸 교도소로 쓰이던 곳이다. 안 마당은 13세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고 마당을 둘러싼 건물의 3면이 아치형 회랑(로지아)으로 되어 있어 우아하고 아름답다. 육중한 돌계단이 있는 벽면에는 피렌체 유명 가문의 문장들이 걸려있다.

 미술관 안마당으로 들어서면 오른 쪽에 16세기 조각실이 있다. 19세기 말 미술관 개관 당시 우피치에서 넘어온 것들이다. 미켈란젤로의 ‘브루투스’가 눈에 들어온다. 메디치 집안의 권력 다툼 와중에 1536년 알렉산드로 데 메디치 공을 살해한 로렌치노를 모델로 했다. 메디치가를 반대하는 입장에 섰던 추기경 리돌피가 이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주문한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유일한 흉상인 이 작품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있는 것을 두고 후대에선 설왕설래하고 있다. 메디치가의 과두정치를 몰아내기 위해 반란에 참여하기도 했던 미켈란젤로가 스스로 작업을 중단했다는 설이 있고, ‘미완의 미학’에 빠져있던 때라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설이 있다. 대의(공화국의 원칙)를 위해 개인적 고통을 극복하고 카이사르를 살해한 브루투스를 메디치가에서는 공화정의 상징으로 여기고 미켈란젤로가 타계한 뒤 이 흉상을 입수해 그 아래에 라틴어 문구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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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조작상들이 놓여있는 바르젤로 미술관 회랑.
인물조작상들이 놓여있는 바르젤로 미술관 회랑.
 이 작품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날카롭게 바라보는 모습으로 망토를 어깨 위에서 브로치로 고정시킨 형태다. 두꺼운 목, 찌푸린 표정과 직시하는 눈, 꽉 다문 입 때문에 전체적으로 근엄해 보인다. 미켈란젤로는 부위별로 다른 조각기법을 사용했다. 망토는 조각칼을 옆으로 뉘어 대리석을 깎아 냄으로서 천의 질감을 나타냈고 얼굴은 소묘하듯 섬세하게 다듬었다. 반면 잘게 곱슬 거리는 머리카락은 대리석의 거친 면을 그대로 두었다. 미켈란젤로 전시실에는 그가 스물한살 무렵 제작한 ‘바쿠스’를 만날 수 있다. 술에 취한 채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단단한 대리석으로 만들어낸 솜씨가 빛나는 작품이다. 역시 미켈란젤로의 초기작에 속하는 대리석 부조 ‘톤도 피티’도 있다.

 르네상스 초기의 거장 도나텔로의 방은 미술관 2층에 있다. 도나텔로는 브루넬레스키의 건축, 마사초의 회화와 더불어 조각에서 르네상스 양식을 창시한 인물이다. 피렌체 예배당의 청동문을 제작 중이던 기베르티의 조수로 일하며 조각가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피렌체에서 예술혁명을 가져온 예술가 중의 한명으로 미켈란젤로가 활동하기 이전 피렌체에서 가장 주도적인 조각가였다.

 그의 초기 작품 ‘ 성 게오르기우스’는 무구 제작자 길드를 위한 수호성인 상으로 주문받아 1415~1417년 제작된 조각이다. 오르산 미켈레 성당 외벽에 보착돼 있다가 보존을 위해 미술관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백마탄 왕자의 원조격인 성 게오르기우스는 창이나 칼도 없이 방패만을 들고서도 당당하게 서 있다. 대리석으로 된 이 조각 작품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기베르티의 양식화된 조각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도나텔로는 값비싼 청동은 아니지만 대리석으로 군소 길드에 걸맞는 참신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덜 장식적이지만 단순하고 겸손해 보이며 인간적인 조각양식은 이후 기베르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조각을 대체하게 된다.

 도나텔로는 1432년 로마를 방문해 고대유적 연구에 열중했다. 바르젤로 미술관에서 가장 돋보이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도나텔로의 ‘다비드’(1450년 경)는 고대 로마의 조각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뒤 만든 것으로 젊음이 넘치는 육체의 표현에서 고전미가 강하게 풍긴다. 등신대(높이 158cm)의 청동 나체 조각상으로 초기 르네상스의 혁신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은 이 작품은 고대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남성 누드 조각상으로도 유명하다. 원래 메디치 궁의 안뜰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가 아름답고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묘사된 것과 달리 도나텔로의 다비드는 강단있는 소년의 모습으로 형상화돼 있다. 그러면서도 사색에 잠긴 얼굴과 부드러운 머리카락, 청동의 감각적인 표면에 드러난 신체의 곡선 등이 어우러져 매우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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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젤로미술관에서 가장 큰 2층의 전시실  모습.
바르젤로미술관에서 가장 큰 2층의 전시실 모습.
 골리앗에 대한 다비드의 승리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했다. 피렌체 공화정에서 인기 있는 이미지였던 다비드를 거장들이 많이 남긴 이유다. 바르젤로에는 또 다른 다비드 상이 있다. 도나텔로에게서 수학한 베로키오가 메디치가의 주문으로 제작한 ‘다비드’(1470년경)다. 베로키오의 ‘다비드’는 수줍은 소년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여리고 섬세한 감정을 지닌 소년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발 아래에는 고통스런 최후를 맞은 골리앗의 잘린 머리가 있다. 화가로도 활동했지만 베로키오는 그림보다 조각에 더 소질이 있었고 특히 청동을 다루는데 탁월했다. 베로키오는 제대로 된 공방을 차리고 도제를 키우며 많은 작업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베로키오의 작업장에서 13년 동안 배우고 조수로 활동했다.

 바르젤로 미술관에는 1401년 제작된 청동부조 작품 ‘이삭의 희생’이 두 점이 전시돼 있다. 피렌체 두오모 앞에 있는 세례당의 청동문을 장식할 예술가를 선정하기 위한 공모전에서 결선에 올랐던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의 작품이다. 이 역사적인 공모전에서는 기베르티가 당선됐다. 기베르티는 그후 23년을 걸려서 세례당의 청동문 한쌍을 완성했다. 낙담한 브루넬레스키는 로마로 답사여행을 떠났다. 로마에서 판테온 등 고대 건축을 면밀히 연구하고 돌아와서는 40년째 미완성으로 방치돼 있던 두오모의 돔을 완성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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