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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산중일기] 연통과 소통

[정찬주의 산중일기] 연통과 소통

입력 2017-01-18 22:44
업데이트 2017-01-1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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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소설가
정찬주 소설가
나의 기상 시간은 새벽 3시 반 전후다. 산자락 아래 절에서 도량석을 하는 목탁소리가 들리기 전이다. 캄캄한 밤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난로에 불쏘시개를 찾아 넣고 불을 지피는 일이다. 요즘 불쏘시개는 작년에 고추 줄기를 지지했던 대나무 토막들이다. 마른 대나무들은 연기가 나지 않을뿐더러 의외로 화력이 좋다. 산중 생활 17년째, 겨울철 난롯불 지피기는 하루의 첫 쪽이다. 손전등을 켜들고 땔감을 나르는 일이 번거롭지만 바늘 같은 별빛을 보면 저절로 정신이 번쩍 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산중은 산촌 농부들이 바람단지라고 부르는 곳인데, 찬 바람의 왕래가 잦아 평지인 읍내보다 기온이 4도쯤 낮다. 절 연못의 물이 찰랑찰랑할 때도 산방연못은 살얼음이 낄 때가 많다. 단열이 시원찮은 산방의 방 온도는 제각각이다. 조금 전에 확인한 온도이다. 골방은 11도, 난로가 가까이 있는 거실 겸 차 마시는 다실은 18도, 서재는 16도이다. 다리 뻗고 잠자는 침실은 눈 붙이고 잘 만하니 17도쯤 될 것이다. 뉴스의 주인공들이 들락거리는 구치소 온도는 얼마쯤인지 가 본 적이 없으므로 잘 모르겠다.

산방 안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은 까닭은 화목난로 덕분이다. 다행히 산중 오지라서 땔감은 수월하게 구할 수 있는 편이다. 달포 전에도 농부 김 노인과 함께 썩어가는 나뭇가지를 난로용 화목 크기로 톱질해 두 달분을 비축해 놓은 바 있다. 절약하면 3월까지는 화목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난로 연통 청소도 며칠 전에 했으니 눈보라가 사납게 몰아쳐도 불을 피우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처럼 겨울철 산중생활의 첫째 덕목은 진부한 표현이지만 유비무환이다. 준비를 잘하면 생고생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초기 불경인 숫타니파타에 목동이 우기를 맞이하여 부처에게 ‘내 움막은 이엉이 덮였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란 구절도 새삼 절절하게 떠오른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이순신 장군이 육지가 아닌 강 초입에서 사변을 막아야 한다는 강구대변(江口待變)이란 방비계책도 같은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내가 숫타니파타의 목동이나 이순신처럼 잘살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준비성이 부족한 이가 바로 나다. 멀리 갈 것 없이 난로의 연통 청소만 해도 그렇다.

3년 전에는 읍내에서 연통설치 기술자를 불러 청소했고, 2년 전에는 손재주가 뛰어난 다헌도예 대표를 불러 연통 안의 검댕을 말끔하게 제거했는데, 작년 입동 무렵에는 무심코 건너뛰었다. 아내가 연통 청소를 하자고 했을 때 나는 2년 동안 했으니 괜찮다고 무시했던 것이다. 나의 그런 태도가 화근이 됐다.

며칠 전 꼭두새벽이었다. 난로에 불쏘시개와 화목을 넣고 불을 지피는데 연기만 풀풀 났다. 전기 흡출기를 돌려 겨우 불을 살렸지만 이번에는 연통이 열을 받아 발갛게 달아올랐다. 연통을 설치한 지 10년 만에 연통 마디가 붉어지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놀라서 일단 난로의 잔불부터 껐다. 연재소설 원고도 뒤로 미루었다. 뼛속을 찌르는 것 같은 한겨울의 매운맛을 실감했다. 아침에 지인 두 사람을 급히 불러 연통 청소를 하면서야 그 원인을 알았다. 석탄처럼 고체화된 검댕에 불이 붙어 연통이 달궈진 것이었다. 입동 무렵 전후로 미리 연통을 청소했어야 했는데 방관했다가 영하의 날씨에 덜덜 떨었던 셈이다.

검댕이 연통 속에 차츰 쌓여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화재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깨달았다. 연통은 연기와 검댕을 밖으로 내보내는 소통의 통로인 것이다. 불통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아찔하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추위에 떨었던 것은 물론이고 내 산방마저 태워버릴 뻔했으니 말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외치는 시민들의 소리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불통이 지속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이 우리를 더 놀라게 할 수도 있다.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이야말로 소통을 막는 연통 속의 검댕 같은 존재가 아닐까. 막힌 연통을 보고 느낀 자각이다. 만약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면 청소는 빠를수록 좋지 않을까 싶다.

소설가
2017-01-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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