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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세계에서 가장 아스트랄한 서점/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문화마당] 세계에서 가장 아스트랄한 서점/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입력 2017-03-01 22:26
업데이트 2017-03-0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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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정연하게 제시된 소설을 그럴듯하게 여겨 현실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독자의 사고방식은 현실을 잊고자 하는 도피 의식일 뿐이다. 이 때문에 체제 쪽에서는 소설들이 잘 정돈된 이야기이기를 원하고 그러한 소설들이란 작가의 본의와는 달리 체제에 협조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는 것이 누보로망 작가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휴머니즘이라는 척도에서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운명을 살게 하고 그 속에 자신을 도피시키는 전통적인 소설 대신 시간과 공간의 단절(우리의 삶에서 보는 일화 하나하나가 이어져 있지 않은 것처럼)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마음 놓고 읽을 수 없도록, 즉 작품 속으로 도피할 수 없게 하여 자신의 현실로 끊임없이 되돌아오게 만드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누보로망의 기수 가운데 한 명이 나탈리 사로트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갑자기 왜 이런 부담스런 얘기를 꺼냈냐면 얼마 전에 다녀온 서점의 이름이 전통적 형식과 결별하고 소설의 방법과 내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나탈리 사로트가 1939년에 출간한 책 ‘트로피슴’(tropismes)과 같았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트로피슴 서점은 네덜란드의 도미니카넌 서점만큼 웅장하거나 영국의 돈트 북스처럼 단아하진 않지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유명한 브뤼셀의 명소다. 언젠가 ‘유럽의 명문 서점’에 실린 사진을 보고, 살아생전에 브뤼셀을 방문할 수 있다면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난데없이 ‘유럽 책방 떼거리 투어단’이 결성되는 바람에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 미술관을 관람하고 오줌싸개 소년 동상과 그랑 플라스 광장을 거들떠본 후에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자는 것이 당일치기 브뤼셀 여행의 일정이었다.

유럽의 수많은 아케이드 쇼핑물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는 생튀베르 갤러리의 화려찬란한 초콜릿 상점들 앞에서 얼마간 헤맨 끝에 우리는 트로피슴 서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점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황금빛 천장과 벽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황금빛 천장과 벽을 뒤덮고 있는 거울이었다. 흡사 나이트클럽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럽고 휘황찬란하다면 휘황찬란한 인테리어는 전통적 형식과 결별하고 소설의 방법과 내용을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작가 사로트처럼 운영자가 수십 년에 걸쳐 이렇게도 바꿔 보고 저렇게도 바꿔 보던 와중에 귀결된 노력의 산물이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에 자리한 서점은 이처럼 독특한 인테리어 덕분에 유명해졌다. 지금은 이 서점을 구경하기 위해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의 숫자도 상당하다고 들었다.

아담한 규모의 매장은 세 개 층으로 구분된다. 지하에는 철학과 심리학 서적이, 1층에는 문학과 역사책이, 2층에는 그림책과 아동서적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서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2층 난간에 서면 사방에 붙은 거울로 인해 10만권의 장서가 수십만권으로 늘어나 보인다. 거의 모든 방문자들이 사진기를 꺼내 드는 그곳에서 ‘마법의 공간’이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 새삼 실감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스트랄한 서점’이라 칭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을 듯하다. 작은 서점을 근사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서점 운영자라면 한번쯤 눈여겨봐도 좋을 텐데. 나처럼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모르는 독자가 가더라도 문제가 될 것 같진 않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 이 칼럼에 사진을 함께 실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2017-03-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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