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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에세이] 희망과 긍정의 사회적 담론/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수요 에세이] 희망과 긍정의 사회적 담론/정재근 유엔거버넌스센터 원장·전 행정자치부 차관·시인

입력 2017-03-07 22:42
업데이트 2017-03-08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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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근 유엔거버넌스 원장, 시인, 전 행정자치부 차관
정재근 유엔거버넌스 원장, 시인, 전 행정자치부 차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냥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음식에 대해 알고 그 음식과 관련된 문화, 역사, 맛 등을 얘기하며 먹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행복에 대해 고민하고 행복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얘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정의로워지려면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많이 논의해야 한다. 이를 우리는 통상 ‘담론’이라고 일컫는다. 이처럼 담론은 현재의 이야기이지만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활발히 논의하는 주제를 손꼽으라면 이것을 사회적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적 담론은 특정 시대 그 사회를 관류하는 사회구성원의 집단적 관심사의 표출이라고 보면 된다. 많은 경우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어 법제도의 개선과 예산의 투입으로까지 연결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담론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대부분의 신문에서 지속적으로 1면 머리기사나 사설의 주제로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요즈음 들어서는 빅데이터를 분석하여 언론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표출된 어휘의 반복 정도를 통해 사회적 담론을 뽑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담론은 우리에게 사회구성원들의 관심사나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을 뛰어넘어 중요한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회적 담론에는 우리 사회가 장차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구성원의 염원이 함께 담겨 있기 있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담론이 무엇인지를 보면 5년이나 10년 뒤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미래 모습은 네가 현재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에 달렸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처럼 사회적 담론은 사회 구성원의 현재 행위를 유도함으로써 미래 우리 사회의 모습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매우 중요한 사회적 담론은 대개 두 가지 형태로 표출된다. 첫째는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우려나 정부 대응의 부족에 대한 비난의 형태로 표출되는 경우이다. 둘째는 문제의 폭로나 비난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이나 희망까지 포함하는 긍정의 담론으로 승화되는 경우이다. 첫 번째의 표출방식이 무엇을 담론으로 할 것인가 하는 주제 선택의 문제라고 한다면 두 번째 표출방식은 선택된 주제를 어떻게 얘기할 것인가에 대한 방식의 문제로 분류된다. 다시 말해 부정과 좌절만을 얘기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그를 뛰어넘는 긍정과 희망까지 얘기할 것인가이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던 사회적 담론은 문제의 제기로 끝나지 않고 이를 극복해야 하고 또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과 희망의 담론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온 국민이 “우리도 잘살 수 있다”고 얘기하곤 하던 그 담론으로 우리는 반만년에 걸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이후 1980년대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민주주의 담론은 끝내 정치 민주화를 이끌어 냈다. 이어 1990년대 우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쳤고 지방자치를 도입했다.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관리를 받던 이른바 외환위기 때는 우리가 뭉쳐서 기필코 극복해야 한다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사회적 담론을 통해 전 국민을 아우르는 ‘금반지 기부 열풍’을 이끌어 냈다.

지난 1년간 월례조회 특강 등을 통해 시·군의 일선 공무원들을 많이 만났다. 그럴 때마다 복도와 식당에서 주로 무슨 말들이 넘쳐나느냐에 따라 여러분과 여러분 조직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얘기했다. 만일 자기만 편안하려는, 쩨쩨하고 이기적인 얘기가 복도에 난무하는 직장이라면 5년 뒤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시·군은 쩨쩨해질 것이다. 반면 주민들의 만족도를 다른 시·군보다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해 보자는 긍정과 희망의 말은 반드시 여러분의 미래를 훌륭하게 만들 것이라고.

되짚어야 한다. 지금 국가 사회의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는 무슨 담론을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고 있는가. 그것은 진정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적절한 문제이고, 또 그 논의 방식은 갈등과 분열의 방식인가, 아니면 희망으로 가는 화해와 긍정의 방식인가. 지금 많은 담론이 우리 사회에 흘러넘치고 있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사회적 담론을 슬기롭게 형성하는 유전자를 입증해 왔다. 부디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러한 유전자가 또다시 발현되어 우리의 사회적 담론이 잘못을 지적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열과 갈등의 담론에 그치지 말고, 문제를 인정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낼 수 있다는 화해와 긍정, 그리고 희망의 담론으로까지 승화되기를 기대한다.
2017-03-08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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