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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경 기자의 출근하는 영장류] 오진의 미래는 숭배다

[홍희경 기자의 출근하는 영장류] 오진의 미래는 숭배다

홍희경 기자
홍희경 기자
입력 2017-03-14 18:10
업데이트 2017-03-1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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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경 산업부 기자
홍희경 산업부 기자
‘부시맨’은 코미디 영화다. 비행기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부시맨들은 ‘신의 물건’이라 생각했다. 처음에 부시맨은 콜라병을 곡식 빻기에 쓰거나 악기처럼 연주했다. 그러다 콜라병을 차지하려 분쟁을 벌인다.

부시맨과 콜라병은 영화적 상상력으로만 빚은 소재는 아닌 듯하다. 2차 대전 뒤 태평양 원주민 사이에 ‘화물 숭배’란 관습이 실재했다. 전쟁 기간 섬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통조림과 라디오를 접한 원주민들이 종전 뒤 활주로를 흉내 내 짓고 신으로 추앙된 비행기 화물을 기다린 관습이다.

‘화물 숭배’는 오진(誤診)에서 비롯된다. 이런 식의 숭배는 문명화 이전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간 살던 방식을 뒤엎는 이질적 시대가 시작될 때 신사숙녀 대부분이 새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해 휘청인다. 새 시대는 과거와의 결별에서 출발하는데, 진단은 과거에 기대 설명하는 속성을 지닌 탓이다. 휴대전화 보급 전 공중전화 없는 거리를 떠올릴 수 없듯 문틈으로 엿보는 것으로 미래 새 시대를 오롯이 진단하긴 버겁다.

집단적으로 수긍하고, 광기적인 열풍을 거친 뒤에야 오진이었음을 깨달을 때가 많다. 기업이 능력주의 채용 방침을 천명하자 취업준비생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펙 경쟁에 뛰어들었다. 실상 능력주의란 게 인재 선별 장치로 쓰이기보다 ‘저임금·불안정 고용을 감수해야 할 너의 능력’을 설득하려는 장치였다는 점은 취업 시즌이 끝난 뒤쯤 깨닫게 된다.

지난해 열풍을 일으킨 웰빙 간편식이 개인주의 확산의 결과란 진단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시중의 간편식 대부분이 집단생활의 최고봉인 군대 전투식량에서 유래했다는 통찰이 없었다면 ‘간편식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긍정하며 추종할 뻔했다.

새 시대가 오는 길목을 막아서려는 절박함이 엿보이는 오진도 있다. 관료들 쪽에서 우리 경제가 너무 이르게 성장 동력을 잃어 ‘조로증’을 겪는다고 진단한 뒤 친기업 정책을 좀더 펴자고 독려하는 처방을 부쩍 주문하는 게 최근의 의심 사례다. 한국은 싱가포르 등과 더불어 2010년까지 반세기 동안 몇 해 빼고 매년 5% 이상 쉼 없이 경제성장을 이룬 여남은 곳 중 하나다. 그런데도 여전히 성장용 영양이 결핍됐다 진단을 내리고, 촉진제 처방을 하고 있다. 성장 숭배 관습이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가는 셈이다.

조로증과 일부 증상이 겹치지만, 성인이 되어 더이상 필요치 않은 영양이 과잉 투입돼 당뇨·고혈압·고지혈증과 같은 ‘성인병’의 상태로 우리 경제에 대한 진단 항목을 바꾸면 처방의 우선순위도 혈관 속 적폐 청소로 바뀔 것이다. 혈관 속 적폐인 정경유착의 병폐가 대통령 파면 사태를 부를 정도로 증세를 드러낸 지금이야말로 ‘성장 숭배’에서 벗어나 오진 가능성을 숙고할 적기다.

과거 1등일수록 새 시대를 경원시할 이유는 넘친다. 하지만 체육 시간 ‘방향 바꿔 달리기’를 떠올리면 꼭 그렇게 볼일도 아니다. 호각을 불 때 달리는 방향을 바꾸면, 첫 번째 호각엔 1등이 꼴찌가 되는 전복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여러 번 호각 뒤엔 호각 패턴을 읽은 아이, 체력이 좋은 아이, 포기하지 않은 아이 중 누가 승자가 될진 두고 볼 일이다. 그 과정에서 한 편의 코미디가 생긴다.

saloo@seoul.co.kr
2017-03-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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