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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브런치] 거짓으로 뇌를 속이는 사회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브런치] 거짓으로 뇌를 속이는 사회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7-03-21 18:16
업데이트 2017-03-2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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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하 사회부 기자
유용하 사회부 기자
점잖아 보이는 사람도 소싯적 친구를 만나면 본색이 나타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집단 기억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만남이 유쾌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친구들과 ‘기억’에 대해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혈기 왕성한 중고등학교 시절 껌 좀 씹어 보고 주먹질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누가 있으랴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리에 없는 A군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그와 주먹을 몇 번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나왔는데 누가 먼저 싸움거리를 만들었냐가 논란이었다.

친구들은 얘기가 다 달랐다. A와의 친소 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었다. 결국 자리에 없는 친구들에게 전화까지 걸어 이야기를 맞춰 보니 나와 친했던 이들의 기억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머리 나쁜 녀석이 쓸데없는 것만 기억한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나름 ‘카메라’같이 선명한 기억력을 자랑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사실 뇌과학과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기억은 카메라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기억은 조작될 수 있고 특정 암시가 반복되면 없던 사실까지 자세하게 기억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나타난다. 사람이란 존재가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받으면 자신의 진짜 기억이라고 굳게 믿는 피암시성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영국 워릭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건을 반복적으로 상상하도록 한 결과 절반 이상이 ‘거짓 기억’을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가짜 뉴스’들이 집단 기억을 왜곡시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도 이달 초 ‘페이스북과 가짜 뉴스, 친구들이 당신의 기억을 어떻게 포장하는가’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로 이 문제를 다뤘다.

과학자들은 반복해서 가짜 뉴스에 노출될 경우 인간의 뇌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뇌 신경망도 비슷한 내용은 무조건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변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군다나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가짜 뉴스들은 더 쉽게 개인의 기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가짜 뉴스’의 유일한 해독제는 개인의 신념과 정반대의 정보도 꾸준히 접하는 것이다.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한 집단기억과 신념은 결속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집단기억은 불행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가짜 뉴스는 집단기억을 왜곡시켜 하나로 만들려는 전체주의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평균과 표준편차를 벗어나는 생각은 불순하다 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모난 돌에 정을 때리는 우리 사회는 가짜 뉴스가 확산되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다.

거짓은 항상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거짓으로 뇌를 속이는 사회는 뇌과학 입장에서 보면 ‘정보 마약’을 지속적으로 집단에 주입하는 건강치 못한 사회다.

edmondy@seoul.co.kr
2017-03-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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