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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마케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문화마당] 마케팅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입력 2017-04-26 17:38
업데이트 2017-04-2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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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언젠가 일 관계로 만난 선배가 “너, 아직 애인 없지. 좋은 사람 있는데 만나 볼래?” 하고 권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대뜸 상대방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키가 좀 크다고. 얼마나 큰데요? 아마 175 정도 될 거야. 에? 제가 175가 안 되는데. 여자 쪽이 더 커도 상관없잖아, 둘이 마음만 맞으면. 그야 그렇지만. 왜, 싫어? 아뇨, 싫다기보다…. 싫다기보다 애초에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을 만날 거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생각해 봤다. 어떨까. 뭐, 상관없을 것 같았다. 마음만 맞으면.

다음날 선배에게 받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어색한 인사와 함께 스무고개 같은 물음과 답이 이어졌다. 상대방은 신촌의 어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들었다. 마침 내가 운영하는 출판사도 마포니까 중간쯤에서 만나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스케줄을 고려해 일주일 뒤에 홍대 근처 밥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통화를 마치기 직전에 나는 조심스럽게 키 얘기를 꺼냈다. 키가 크시다고 들었어요. 네, 제가 좀 큰 편이에요. 저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요. 아! 말도 못하게 작으신가요(웃음)? 그렇지는 않고요(안 웃음). 그게 아니라면 저는 상관없는데 신경이 쓰이시면 제가 굽 없는 신발을 신고 나갈게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지만 막상 당사자에게 직접 키가 크다는 말을 들으니 역시 신경이 쓰였다. 상대방의 심정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제야 비로소 마음만 맞으면 될 거라는 식으로 안일하게 여겼던 걸 후회했다.

그러던 와중에 페이스북에서 떠돌고 있던 광고와 마주하게 되었다. ‘수제 키 높이 운동화, 당신의 5센티미터를 남몰래 올려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리라. 이런 상황이니까 보였던 거다. 키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무의식중에 이런 해결책이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니 예쁜 스니커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것저것 따지며 망설일 계제가 아니어서 즉시 주문했다.

결제를 마치고 하루가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메시지가 왔다. 키 높이 신발 판매 사이트의 담당자인데 배송까지 일주일이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어라, 그러면 안 되는데. 메시지에 표시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조그만 회사인지 마침 사장님이 직접 받았다. 나는 배송을 하루 앞당기는 게 가능한지 물었다. 수제화는 만드는 데만 엿새가 걸린다, 배송까지 감안하면 일주일도 빠듯하다, 그동안 계속 일만 했기 때문에 자신도 이번 주말에는 쉬어야 해서 일정을 앞당기기는 어렵다, 원한다면 환불해 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다급해졌다.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마음에 “실은 제가 좋은 사람을 만나는데 상대방이 키가 커서” 어쩌고 하는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털어놓고 말았다. 수제화를 만드는 사장님은 한참 동안 “아하”라거나 “오호” 하고 맞장구를 치며 내 얘기를 열중해서 듣다가 마침내 호탕하게 웃더니 “그렇다면 도와드려야지” 하고 시원시원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리하여 자그마치 이틀이나 빨리 신발이 도착했다. 한 명의 소비자를 위해 휴일을 전부 반납했던 거다. 이런 작은 마음씀씀이가 고객에게는 크게 전해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도 독자를 상대하는 출판사 대표로서 사장님을 본받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어쨌거나 신발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2017-04-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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