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첫 공연하는 뮤지컬 ‘헤드윅’ 주인공 마이클 리

뮤지컬 ‘헤드윅’(1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은 동독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트랜스젠더 록가수 헤드윅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로 유명세를 떨친 이 작품은 1998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의 한 소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20년 가까이 흘렀다. 2005년 한국으로 건너온 헤드윅은 미국보다 국내에서 더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마이클 리는 지난 3월에 이어 오는 12월 초 단독 콘서트 ‘소 파’(So Far)의 두 번째 무대를 선보인다. 그는 “헤드윅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마이클 리라는 사람이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고 뮤지컬 배우가 됐는지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br>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헤드윅’은 꿈의 배역… 아예 생각도 못 했어요

보통 4~5명의 남자 배우가 번갈아 연기하는 각양각색의 헤드윅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작품의 매력. 올해는 좀더 특별한 헤드윅이 등장했다. 한국 공연 최초로 영어로 노래하고 말하는 헤드윅이다. 미국에서 한국을 방문한 헤드윅이 대학로의 낯선 공연장을 찾아 한국 관객과 만난다는 설정의 원어 무대를 책임지는 이는 재미교포 배우 마이클 리(44)다. 처음으로 맡게 된 헤드윅은 그에게 “꿈의 배역”이었다. 약 3년 전부터 원어 공연의 주인공으로 마이클 리를 점찍었다는 제작사 쇼노트의 임양혁 이사는 “뮤지컬 ‘헤드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이는 한정판 공연”이라고 말했다.

오리지널 버전과 흡사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이번 공연은 마이클 리에게도 의미가 깊다. 단지 친숙한 영어로 무대에 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성전환 수술에 실패하고 사랑하는 첫 남편과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헤드윅의 외로움을 오롯이 표현할 수 있는 건 그 역시 소수자로서 삶의 장벽 앞에 많이 서 봤기 때문이다.

“한국 남자들이 평소 얼마나 차별을 받는지 잘 모르지만 저는 미국에서 태어난 동양인으로 인종 차별을 많이 겪었어요. 헤드윅의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을 상대적으로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좀 다른데 어떻게 해야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계속 했어요. 헤드윅도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요.”

영화로 처음 만난 헤드윅은 그에게 꿈같은 존재였다. 미국 무대에서 동양인 배우를 써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꿈만 꾸다가 실은 꿈에서도 안 될 것 같아서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활동하던 중 3년 전 조승우씨가 출연한 헤드윅을 보고 다시 꿈꾸게 됐죠. 그런 무대에서, 게다가 영어로 공연을 한다니 정말 영광이죠.”

원어 무대는 대사 전달에 대한 부담은 적지만 작품 자체가 커다란 도전이다. “2시간 동안 거의 혼자 공연을 이끌어야 하는 원맨쇼잖아요. 게다가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반쪽을 찾는 심오한 주제를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작품이죠. 관객 반응이 걱정됐는데 한국 관객이 워낙 헤드윅에 대한 애정이 커서 인지 언어와 상관없이 제 공연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1995년부터 미국에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2006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 크리스 역으로 한국 관객과 처음 눈을 맞췄다. 2013년 가족(아내와 아들 둘)을 모두 데리고 아예 한국에 정착했다. “2013년 제가 출연했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아내가 미국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해 줬죠. 사실 한국어 연기는 겁도 나고 어려웠지만, 그만큼 많이 배웠어요. 2년 뒤 뮤지컬 ‘앨리전스’ 출연을 위해 다시 브로드웨이에 갔을 때 그곳 선후배, 동료보다 제 무대 경험이 훨씬 많은 걸 보고 한국에서 제가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지 깨달았어요.”
뮤지컬 ‘헤드윅’ 마이클 리
●시나리오 쓰고 작사·작곡… 연출도 하고파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의대 진학 준비를 하다가 배우의 길로 접어든 그는 꾸준히 시나리오 작업과 작사, 작곡을 해 왔다. 그래서인지 그는 배우 이외에도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었다.

“요즘에는 연출을 하고 싶은 소망이 있어요. 어릴 때는 오로지 제가 맡은 배역만 생각했죠. 요즘은 연습실에 가면 ‘어떻게 하면 이 작품의 스토리를 잘 보여 주고 등장인물들의 매력을 잘 보여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해요. 제가 직접 쓰고 연출하는 뮤지컬 무대에 동료 배우들이 서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꿈만 같아요. 다른 배우들의 꿈을 키워 주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싶은데 잘은 모르지만 이런 걸 아빠 마음이라고 하나요? 하하하.”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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