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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 이야기] “후일 공을 세우면 사형죄 면할 것”… 집행유예인가 선고유예인가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 이야기] “후일 공을 세우면 사형죄 면할 것”… 집행유예인가 선고유예인가

입력 2017-10-19 17:52
업데이트 2017-10-1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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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동관에 도착한 조조는 기가 막힌다. 성을 지키기만 하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조홍이 명령을 어기고 성을 나가 결국 동관을 잃었기 때문이다. 화가 난 조조는 조홍의 목을 치려고 한다. 깜짝 놀란 장수들이 조조를 극구 말린다. 지금까지의 공과 충성을 감안해 관대한 처분을 해 달라고 간청한다. 고민하던 조조는 목을 치라는 명을 거두는 대신 앞으로 뭔가 공을 세우면 죄를 용서하겠다고 한다. 그 후 마초와의 싸움에서 조조가 크게 패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그때 누군가가 목숨을 걸고 마초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다. 바로 조홍이다. 조조도 비로소 조홍의 공을 인정해 동관을 잃은 죄를 사면해 준다.

박하영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 원저 : 요코야마 미쓰테루

※ 참고 : 만화 삼국지 30,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역자 이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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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최선아 민화작가
일러스트 최선아 민화작가
조조는 명령을 어긴 조홍에게 크게 화가 나 처음에는 그의 목숨을 앗으려 했다. 당연히 조홍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조조도 그동안의 공과 충성을 감안해 한 번 더 기회를 주라는 장수들의 간언을 외면할 수 없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조조의 용서는 그의 목숨을 구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잘못에 대해서는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처벌을 받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나중에 더 큰 처벌이나 화(禍)로 이어진다. 하지만 처벌 대신 용서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조조의 용서가 증명한다. 우리 형법에 조조처럼 처벌을 유보해 주는 경우는 없을까. 처벌을 유보해 주었는데도 반성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공을 세울 것을 전제로 한 유예 판결

조조의 조홍에 대한 판결은 어떤 의미에서는 조건부로 이루어진 것이다. ‘조홍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다만 나중에 공을 세우는 조건으로 형의 집행을 면제해 준다’는 내용이다. 이 말을 뒤집어 살펴보면 나중에 공을 세우지 못할 경우 사형을 집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조홍이 그동안 세운 공을 감안하고, 앞으로 공을 세울 것을 조건으로 형의 집행을 잠시 미루어 둔 것이다.

이런 형식의 판결은 우리 법에도 있다. ‘피고인 조홍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다만 이 판결 확정일로부터 2년간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와 같은 것이다. 바로 집행유예 판결이다. 집행유예 판결은 분명 유죄판결이다. 다만 유예된 기간인 2년 동안 조홍이 고의적으로 다른 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지 않으면 법률적으로는 실형을 받지 않은 것으로 취급한다.

‘피고인 조홍을 징역 1년에 처한다. 다만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라는 판결도 있다. 집행유예와 유사하지만 엄연히 다른 선고유예 판결이다. 법원의 판결 중 가장 가벼운 유죄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선고유예 기간은 일률적으로 1년이다. 조홍이 1년 동안 자격정지 이상의 판결을 받지 않으면 아예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것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잘못된 판결이지만 선고유예 근접

형법상 집행유예가 선고되기 위해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할 경우라야 한다. 이에 반해 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형’을 선고할 경우 가능하다. 그런데 조조는 ‘사형’을 선고하면서 이를 유예했다. 형식상으로는 옳은 판결이 아닌 것이다.

집행유예와 선고유예는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매우 유사하다. 또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무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조홍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조홍은 군인으로서 공무원 신분이다. 공무원에게 집행유예 판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33조는 공무원 임용 결격사유를 정하고 있는데, 이 중 유예 성격에 따라 일부는 당연퇴직 사유도 된다. 제4호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5호에서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라고 정하고 있다. 다만 선고유예는 뇌물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 업무상 횡령과 배임으로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로 한정된다. 즉 조홍이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면 죄명과 관계없이 당연히 퇴직하게 된다. 공무원 신분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면 죄명에 따라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조홍이 저지른 죄가 앞서 본 뇌물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조홍은 이후에도 군인이라는 공무원 자격을 유지했다. 결국 조조가 조홍에게 내린 판결은 우리 법에 비추어 보면 선고유예 판결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보호관찰·수강명령·사회봉사명령

우리 형법은 형의 종류로 9가지를 정하고 있다.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형법 제41조)가 그것이다. 그런데 판결문에는 선고유예와 집행유예 이외에 다른 조건이 붙기도 한다. ‘피고인 조홍에게 사회봉사 80시간, 수강명령 40시간, 보호관찰 2년을 명한다’는 것이 그 예다. 이것도 형벌의 일종일까. 그렇지 않다. 판결에 붙여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뉘우칠 기회를 제공하는 다양한 방법이다.

조조가 조홍에 대한 판결에 붙여 ‘서황의 간언을 듣지 않고 전투에서 졌으니 1주일에 한 번씩 서황과 면담하라’고 할 수 있다. 또 ‘마초에게 병법에서 졌으니 손자병법 강의를 들으라’고 할 수도 있다. ‘당신 때문에 저승으로 간 병사의 가족들을 위해 집을 지어 주어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 첫 번째는 보호관찰(保護觀察), 두 번째는 수강명령(受講命令), 세 번째는 사회봉사명령(社會奉仕命令)에 해당한다.

보호관찰은 교도소에 수용하지 않은 채 반성을 유도하고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또 수강명령은 강의나 훈련, 상담 등을 통해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이나 잘못된 생각을 고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회봉사명령은 무보수 봉사를 통해 땀을 흘리며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이런 제도들은 모두 준법지원센터(복수 명칭 ‘보호관찰소’)에서 집행을 담당하고 있다.

조홍이 수강을 통해 병법을 다시 익히고, 봉사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속죄할 기회를 얻는다면 교정시설에 수용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보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사람 중 90% 이상이 평생 봉사를 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봉사명령을 다 이행한 후에도 봉사에 나서는 사람이 적지 않다. 땀은 사람의 죄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씻어 주는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홍이 손자병법 강의를 듣고, 봉사를 하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조홍에게 유예된 판결이 취소될 수 있다. 유예되었던 형기 동안 교도소에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2017-10-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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