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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현장’ 반복 출동 소방관들 트라우마·우울증 ‘고통’

‘참혹한 현장’ 반복 출동 소방관들 트라우마·우울증 ‘고통’

김태이 기자
입력 2017-12-08 10:22
업데이트 2017-12-0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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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 안 하면 잠 못 자” 베테랑조차도 정신적 충격 지속

“화재 현장의 불에 탄 시신, 사망자가 있는 처참한 교통사고 현장을 보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기억들이 되살아납니다”

소방공무원 5년 차인 A씨에게 처음 출동했던 사건 현장은 아직도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남아 있다.

지난해 소방서 내근을 지원한 뒤 행정업무를 담당해 현장 출동은 하지 않지만, 당시의 끔찍한 장면이 떠오르는 날에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참혹한 사고 현장은 베테랑 소방공무원들도 힘들게 한다. 올해 15년 차인 소방관 B씨는 “지금도 사람이 많이 다치거나 숨진 현장에 출동한 날에는 술을 한잔해야만 잠자리에 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 경험이 늘면서 정식적인 충격의 강도는 줄긴 했지만, 여전히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후배들과 같이 일하면서 현장에서 받은 충격을 겉으로 드러낼 수도 없어 술에 의지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각종 사건·사고 현장을 누비는 것이 일상인 소방공무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PTSD, 우울증, 불면증, 알코올성 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다.

충북도 소방본부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충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의뢰, 설문조사로 소방공무원 1천377명의 정신건강을 조사한 결과 1.5%인 21명이 PTSD 위험군으로 분석됐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소방공무원도 2.6%인 36명으로 조사됐다.

또 3.8%(53명), 6.0%(83명)는 각각 불면증과 알코올성 장애 등의 위험군으로 분류됐다.

매년 시행하는 건강검진에서 나타난 결과는 더 좋지 않다.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소방공무원 1천548명 가운데 PTSD와 우울증 위험군은 올해 충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조사와 비슷한 1.7%(27명), 2.9%(46명)로 나타났으나 수면장애는 무려 12.9%(204명)로 집계됐다. 잦은 음주도 15.8%(241명)나 나왔다.

2015년의 건강검진에서도 PTSD 1.3%, 우울증 3.1%, 수면장애 11.8%, 잦은 음주 15.6% 등 수치를 보였다.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건강에 대한 ‘적신호’는 전국적으로 비슷하다.

지난해 전국 소방공무원 4만1천65명의 2.2%와 3.8%가 참혹한 현장에서 겪은 기억 때문에 PTSD,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수면장애와 잦은 음주 역시 각각 15.1%, 15.4%로 집계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북도 소방본부는 지난달 21일 충북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약을 하고 소방공무원들의 정신건강 지키기에 나섰다.

이 협약에 따라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난달 구조대장 등 최일선에서 일하는 관리자 등을 대상으로 동료의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심리상담 기법에 대해 교육을 했다.

다음 달부터는 소방본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상담과 함께 자살예방 등을 위한 생명 지킴이 양성교육도 하기로 했다.

충북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아무리 직업이지만 참혹한 현장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소방관들의 지친 심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전문 치료병원을 설립하는 등 정책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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