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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희생자 가족 마음 움직인 ‘살인범 부모의 사과’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희생자 가족 마음 움직인 ‘살인범 부모의 사과’

입력 2018-02-23 17:40
업데이트 2018-02-2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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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지난 2월 14일, 미국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열광하는 사이, 적어도 우리에겐 조용히 잊혀진 사건이 되었다. 미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6년 동안 미국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은 모두 270차례, 일주일에 한 번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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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난사 피해자의 유족만큼 가해자의 가족이 겪는 고통도 크다. 사진은 지난 17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니콜라스 크루즈의 양부모인 킴벌리(왼쪽)·제임스 스니드 부부가 괴로워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총기 난사 피해자의 유족만큼 가해자의 가족이 겪는 고통도 크다. 사진은 지난 17일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니콜라스 크루즈의 양부모인 킴벌리(왼쪽)·제임스 스니드 부부가 괴로워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은 돈줄인 미국총기협회(NRA)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 대통령 트럼프는 한 술 더 떠 “만약 총기에 능숙한 교사가 있었다면 매우 신속하게 범인을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교사들의 총기 무장 허용을 시사했다. “학교들이 미치광이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교사들 중 20%를 무장시킬 수 있다”는 나름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총으로 총을 막겠다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맞나 싶은 말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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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 두 명이 특별한 이유 없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그중 하나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이다. 수 클리볼드는 지난 17년 동안 평범한 아들이 끔찍한 살인자가 된 이유를 묻고 또 물었다. 수가 책을 낸다고 할 때 사람들은 수군거렸을 게 분명하다. 내 아들은 그런 아이가 아니다 정도의, 일종의 명예회복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을 터다.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수는 딜런의 행동 자체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수는 결론처럼 말한다. 내 자식을 내가 모를 수 있다고, 어쩌면 자식을 아는 일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고.

수는 사고 초기 극도의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들의 행위는 곧 엄마의 행위였고, 세간의 시선도 그러했다. 양말 한 짝을 신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 일쑤였고, 어떤 날은 옷을 다 입는 데 네 시간이나 걸리기도 했다. 죄책감에서 오는 깊은 무력감에 수는 오랫동안 시들어갔다. 하지만 용기를 냈고, 펜을 들어 일기를 썼다. 다시 비탄에 빠질 때도 있었지만 “내 아들과 아들이 한 일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무수한 감정들을” 일기장에 빼곡하게 써내려갔다. 감정의 배설이었다면 그 일기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수는 “희생자 가족들에게 직접 다가가기 전에 나는 일기를 통해 그들에게 사죄하고 홀로 애도했다”고 썼다. 이 책은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사죄의 편지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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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 출판평론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실제로 가해자 가족으로서는 책의 출간이 곧 또 다른 상처와 분노를 배태하는 일일 수 있다. 하여 수는 시종 희생자 당사자와 가족, 친구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춘다. 놀라운 일은 희생자 가족들이 수와 그의 가족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우리의 슬픔과 곤경을 가엾게 여기고 손을 뻗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분들은 살인자의 엄마가 되는 게 어떤 일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공감의 한 자락을 내어주었다.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삶은 견디는 일의 연속이라고 했다. 수는 슬픔을 견뎠고, 그 슬픔 가운데로 희생자 가족들이 들어와 손을 내밀었다. 책의 부제는 ‘비극의 여파 속에서 살아가기’(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이지만, 그것이 꼭 비극의 연속은 아닌 셈이다. 교사들에게 총을 쥐여 주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는 어떤 이는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의 함의를 백 번 읽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꼭 총기 난사가 아니어도, 갖가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할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2018-02-2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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