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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부시 당선되자 방북 목전서 취소… 카터 중재 ‘제네바 합의’ 공화 압승에 무력화

빌 클린턴, 부시 당선되자 방북 목전서 취소… 카터 중재 ‘제네바 합의’ 공화 압승에 무력화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입력 2018-05-25 18:16
업데이트 2018-05-2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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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아니었다… 북미 ‘파기의 역사’

저변에 불신… 초강대국 우월감도 작용
주기적 선거에 북핵 정치적 이용 의도도
김정일 - 클린턴 면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빌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일행에게 무엇인가 설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김정일 - 클린턴 면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빌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일행에게 무엇인가 설명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다. 18년 전인 2000년에도 미국은 지금처럼 목전에 둔 북·미 정상회담을 먼저 걷어찼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정상회담말고도 북한과의 합의를 여러 번 일방적으로 파기한 역사를 갖고 있다.

1차 핵위기는 1993년 3월 북한이 핵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시작됐다. 영변 원자로에 대한 미국의 ‘외과수술식 폭격’까지 검토됐던 전쟁 위기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출구를 마련했고, 북·미는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기본 합의’를 체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보름 뒤인 11월 초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상하 양원을 장악하는 압승을 거두면서 제네바 합의는 무력화되기 시작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의 제동으로 미국이 약속한 경수로 건설과 중유 제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2005년 9월 북한 핵문제 해결 로드맵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진통 끝에 타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11일 만인 9월 30일 강경파가 주도하는 미국 재무부가 북한 지도부의 비자금 창구로 알려진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에 금융 제재를 가하면서 9·19 공동성명은 휴지조각이 됐다. 이에 반발해 북한은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하고 2006년 말 공화당이 참패하자 부시 행정부는 다시 대화 모드로 나서 2007년 2·13 합의를 타결했다. 하지만 이때는 얼마 전 미국의 9·19 공동성명 파기를 되갚아주듯 북한이 먼저 합의를 파기했다.

앞서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말인 2000년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부시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12월 말 클린턴은 곧 출범할 부시 행정부의 반대를 의식해 평양을 방문하기 어렵다고 취소 의사를 밝혔다.

주로 미국이 먼저 북한과의 합의를 파기하는 배경에는 북한에 대한 불신이 근저에 깔려 있기도 하지만, 세계 초강대국으로서의 우월감이 작용하거나 북핵 문제를 미국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주기적으로 선거가 있기 때문에 지지율 올리기에 안보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일관성 있는 정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18-05-2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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