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소프트 파워’로 아프리카 은밀히 공략
지난달 11일 아프리카 서북부의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있는 ‘공자학원’(孔子學院) 중국어 교실. 교실에는 중국어 책과 포스터, 한자로 빼곡히 씌어진 칠판 등 온통 중국과 관련된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중국어 선생님이 “매점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1학년 학생들은 “매점은 어디에 있습니까”를 힘찬 목소리로 따라했다. 중국어 선생님인 쿠마크 바쿰은 중국 동북부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대학에서 3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2016년 귀국해 이 학원에서 3년째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바쿰은 “오늘 중국어 수업 내용은 매점을 이용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라며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반복적으로 따라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세네갈 수도 다카르 소재 셰크앙타디오프대학 안에 설립된 ‘공자학원’.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 홈페이지 캡처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 홈페이지 캡처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를 ‘은밀히’ 공략하고 있다. 아프리카 최대 교역국가로 떠오른 중국의 ‘소프트 파워’(군사력이나 경제제재 등 물리적 힘이 아닌 민간교류와 원조, 예술, 학문, 교육, 문화 등 무형의 힘으로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을 의미)가 미국과 유럽을 제치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세네갈 다카르 국제공항에서 한 시민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도착하자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흔들며 환영하고 있다.
서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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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반이민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데다 유럽 역시 이민자들에 대한 장벽을 쌓아올리면서 중국이 그 틈새를 재빠르게 비집고 들어가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월 아프리카 국가들을 겨냥해 “우리가 왜 ‘거지 소굴’ 같은 나라들의 이민을 받아줘야 하느냐”고 푸념하는 바람에 아프리카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이 아프리카 출신 학생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하는 동안 중국 정부는 장학금까지 지급하면서 오히려 이들의 중국 유학을 유치하는 등 선심을 쓰고 있다.
소프트 파워 전파의 첨병 역할을 하는 곳은 아프리카의 39개국 54곳에 설립된 공자학원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달 17일 보도했다.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가 세계 각국의 대학과 연계해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세운 비영리 교육기관이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세계 138개국에 공자학원 525곳이 설립됐다. 아프리카 국가 곳곳에 침투한 공자학원에서는 중국어와 중국 역사, 문화뿐 아니라 청년들의 취업에 필수적인 엔지니어링과 정보기술(IT)을 가르치는 까닭에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특히 공자학원의 경우 해마다 50명 안팎의 우수 학생들을 뽑아 장학금을 지급해 중국 대학에서 공부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중국이 막강한 경제력을 이용해 ‘소프트 파워’ 전파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젊은이들은 현지 중국 기업에 취업하고 중국과의 교역에서 사업 기회를 얻는 등 ‘차이나 드림’을 이루거나 중국의 영향력 확대의 과실을 따먹기 위해 기를 쓰고 중국어를 공부한다. 셰크앙타디오프대학 공자학원에 다니는 압둘라예 디예(25)는 “세네갈 최대의 도로와 건물들은 중국 기업들에 의해 건설됐다”며 “중국어를 배워 중국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과 세네갈을 연결하는 민간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디예의 동급생인 앙디 쿤타(24)는 “우리 가족은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는 이어 “중국에 관한 모든 것이 나에게 놀랍다”면서 “중국 문화를 좋아하고, 중국 음식을 좋아한다”고 중국예찬론을 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자학원에 다니는 학생들 중 일부 중국 마니아들 사이에는 중국 이름 갖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들의 중국 이름은 보통 자신의 성격을 표현하거나 아프리카 이름을 문자 그대로 번역해 짓는 경우가 많다. 바쿰은 리가오핑(李高平)이라는 중국 이름을 지었다. 디예는 그가 키가 크고 조용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귀띔했다.
이곳에 진출한 중국인들도 중국 전통 문화 전파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중국인 100만명 이상이 아프리카에 진출했다. 중국인들은 양계장부터 정보통신, 건설업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의 각종 산업을 장악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전역에 차이나타운을 세웠다. 곳곳에 생겨난 중국인 식당과 상점 등은 현지인들과의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다카르 차이나타운에서 세네갈인들이 중국 바이주(白酒·배갈)를 마시며 건배를 외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공자학원 외에도 다카르 흑인문명박물관과 국립극장 건설에 자금을 지원해 소프트 파워 전파를 측면에서 돕고 있다. 덕분에 아프리카 대륙에서 공용어로 쓰이는 프랑스어와 영어, 포르투갈어 등을 밀어내고 중국어가 공용어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세네갈 공자학원의 책임자인 마마도 폴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중국어는 프랑스어처럼 공용어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50년 이내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50년 후에는 아프리카의 링구아 프랑크 (Lingua franca·서로 다른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이 소통할 때 사용하는 제3의 언어)가 중국어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영어와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등과 같은 이전 식민지 국가의 언어가 이제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khkim@seoul.co.kr
2018-06-02 1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