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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다큐] 577.9㎞짜리 인생 스펙 한 줄

[포토 다큐] 577.9㎞짜리 인생 스펙 한 줄

정연호 기자
정연호 기자
입력 2018-07-26 22:14
업데이트 2018-07-2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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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국토대장정 144명 청춘과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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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간 후 맑게 갠 하늘 아래로 대원들의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후 맑게 갠 하늘 아래로 대원들의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37도가 넘는 날씨가 이어지면서 전국에 폭염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아스팔트 위로 144명의 청춘들이 걷고 있다. 강원도 평창에서 출발해 21일 동안 총 577.9㎞를 걸어 종착지인 전남 목포를 향해 가고 있는 이들은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에 참가한 대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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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여정을 보내고 있는 대원들이지만 표정에서는 힘든 기색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청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힘든 여정을 보내고 있는 대원들이지만 표정에서는 힘든 기색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청춘’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기보다 방학이면 더 바빠지는 게 요즘 대학생들이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와 학비를 위한 아르바이트까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생활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금쪽같은 21일을 국토대장정을 위해 사용했다. 국토대장정 참가도 이력서에 넣을 한 줄의 스펙을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고 3일 동안 이들 옆에서 함께 걸어 보았다.

폭우가 쏟아질 때도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도 대장정 행렬에서는 재잘거림이 끊이질 않았다. 이성 친구 이야기부터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걷는 동안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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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원이 휴식시간 동안 화끈거리는 물집투성이 발을 식히고 있다.
한 대원이 휴식시간 동안 화끈거리는 물집투성이 발을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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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원이 발에 난 물집을 치료하고 있다.
한 대원이 발에 난 물집을 치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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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들의 다리가 햇빛에 검게 그을려 양말로 가려진 부분과 확연히 대조되고 있다.
원들의 다리가 햇빛에 검게 그을려 양말로 가려진 부분과 확연히 대조되고 있다.
히잡을 쓰고 참가한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눌자헌(23·구미대) 대원은 “한국 학생들은 개방적이다. 나를 외국인이 아닌 친구로 대해 준다. 이곳에서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도보 중 나누는 대화는 힘들어하는 서로를 북돋아 주는 역할뿐 아니라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대원들에게 143명의 동반자를 만들어 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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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에 매달린 슬리퍼가 덜렁거리며 주인을 따라가고 있다.
배낭에 매달린 슬리퍼가 덜렁거리며 주인을 따라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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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급하게 빤 빨래가 다 마르지 않자 대원들이 배낭에 빨래를 매달고 도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 급하게 빤 빨래가 다 마르지 않자 대원들이 배낭에 빨래를 매달고 도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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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페이퍼로 변한 한 대원의 조끼에는 동료 대원들의 진한 메시지들이 남겨져 있다.
롤링페이퍼로 변한 한 대원의 조끼에는 동료 대원들의 진한 메시지들이 남겨져 있다.
숙영지가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구호소리가 처진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행진요원이 뿌려 주는 물세례를 맞으며 숙영지에 도착하자 대원들은 다시 활기를 충전했다. 천막으로 만든 간이샤워장에서의 3분간의 짧은 샤워에도 행복해하고 퀘퀘한 땀냄새에 대해 서로에게 장난스럽게 사과하고 발바닥에 잡힌 물집 크기를 자랑했다. 우울한 표정의 대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장정 참가를 위해 미국에서 귀국한 서던유타주립대 항공운항과 2학년 강태림 대원은 “감이 중요한 비행기 조종 연습을 잠시 멈추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조금 천천히 간다고 해서 긴 인생에 지장이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면서 대장정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대원들 중에는 대장정을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생각해서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한남대 이재열 대원은 방학 동안 계획했던 외국어 공부, 공모전 준비 그리고 12시간씩 하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잠시 접어 두고 참가했다. “처음에는 대장정 또한 스펙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이 대원은 말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600㎞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걷는 것이 오히려 ‘삶의 쉼표’가 됐다고 말하는 것이 요즘 청춘이다. 잠깐의 휴식에도 뒤처짐을 걱정해야만 했던 대원들에게 이번 대장정이 한 줄의 스펙보다 더 큰 의미로 기억될 것 같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2018-07-2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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