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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원죄/이두걸 논설위원

[길섶에서] 원죄/이두걸 논설위원

이두걸 기자
이두걸 기자
입력 2018-12-23 22:40
업데이트 2018-12-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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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 사투 중인 부친과 오랜 대화를 나눈 건 거의 20년 전이다. 대학 한국현대사 과목의 구술사(口述史) 숙제를 해야 했다. 구술사는 특정 사건이나 시대에 대한 개인의 주관을 기록한다. 당신은 ‘월남에서 돌아온 이 병장’이었다. 당시 시민사회 진영에서 제기하기 시작하던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 학살에 대해 물었다. “당시 전장에서도 ‘국군이 베트남 민간인을 몰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유월남을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 대신 ‘이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커졌다. 나중엔 ‘기독교인인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을까’라는 회의감을 지울 수 없었다.” 당시를 떠올리는 표정에는 회한이 가득했다. 평생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렸으면서도 참전용사회 등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베트남에서 ‘박항서 신드롬’이 한창이다. 현지에서의 ‘메이드 인 코리아’의 입지가 더욱 확고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를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일본에 ‘강점 당시의 만행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우리는 베트남에 한 번도 민간인 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하지 않았다. 원죄를 언제쯤 씻을 수 있을까.

douziri@seoul.co.kr
2018-12-2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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