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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랜덤박스/류휘석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랜덤박스/류휘석

입력 2018-12-31 17:42
업데이트 2019-01-0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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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매일 허들을 넘다 실패하는 광대들이 살아요



불필요한 기념일이 빼곡한 달력, 숨 쉴 날이 없어요
나 대신 종이에 누워 숨 쉬는 사람들
밤이 되면 광대는 잠을 자고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허들을 치우고 부서진 광대들을 주워 종이 상자에 집어넣습니다
그늘을 뿌리는 거대한 인공 나무, 물을 줘요 잘 자라서 더 크고 뾰족한 허들을 만들어내렴

그렇지만 모든 게 나보다 커져서는 안 돼,

광대들은 일도 하지 않고 아침마다 이불을 걷어냅니다 나는 토스트처럼 튀어 올라 침실을 접어 내던져요 나를 어지럽히는 벽시계와 발목에 생긴 작은 구멍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커집니다

방이 비좁아서 나는 밖에 있습니다 밖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상자를 만들어야 해요 재사용 종이는 거칠고 단단해서 반성에 알맞습니다
천장에 붙어 기웃거리는 가녀리고 얇은 나의 광대들
반성이 시작된 집은 무덤 냄새가 나는 요람 같아요

나는 탄생부터 기워온 주머니를 뒤집습니다 바닥은 먼지로 가득찹니다
도무지 채워지질 않는 상자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실패와 실종

내가 죽으면 광대들은 허들을 넘을까요
궁금해서 죽지도 못합니다
2019-01-01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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