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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새해 인사 유감/최준식 이화여대 한국어과 교수

[열린세상] 새해 인사 유감/최준식 이화여대 한국어과 교수

입력 2019-01-17 23:14
업데이트 2019-01-18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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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 이화여대 한국어과 교수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어과 교수
또 해가 바뀌었는데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작은 불만들이 생긴다. 그런 것을 자꾸 이야기하면 까탈스럽다고 할까봐 삼가고 있었는데 마침 이런 지면이 마련됐으니 잠깐 언급할까 한다.

우선 간지 문제다. 새해가 되면 그해의 간지를 발표한다. 올해는 기해년으로 돼지해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간지를 쓸 때에는 음력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해년은 설인 2월 5일부터 시작되는 해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개띠 무술년이고 기해년까지는 20일 정도 남은 것이 된다.

일전에 명리학 하는 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설이 지나도 당분간은 그전 해의 기운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주를 볼 때 조심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지만,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진짜 기해년은 앞으로도 많이 기다려야 할 판이다.

그다음은 인사 문제다. 가장 많이 받는 새해 인사는 말할 것도 없이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다. 이런 인사를 받고 나는 답을 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복을 받으려면 먼저 복 받을 짓을 했어야 하는데, 내게는 그런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점심도 공짜가 없다는데 아무 짓도 안 한 내가 어떻게 복같이 엄청난 것을 받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덕담을 제대로 하려면 ‘새해엔 복 지을 일 많이 하세요’라고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런가 하면 이 인사는 표현도 조금 거슬린다. 왜냐하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명령조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만일 그 인사를 받은 상대방이 ‘내가 복을 받건 말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어쩔 건가? 특히 이것은 웃어른들에게는 좋지 않은 표현이다. 따라서 정확히 하려면 ‘복 많이 받기를 기원합니다(혹은 바랍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문제는 세배를 할 때에도 발견된다. 절은 어른들에게 하는 것이니 더 조심해야 하는데, 여기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벌써 알아챘을 것이다. 우리가 세배를 하면서 ‘절 받으세요’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도 또 명령조가 등장한다.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는 다양한 연령층에 하는 것이라 그래도 괜찮지만 ‘절 받으세요’는 어른들께 하는 언사라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1960년대) 세배를 하면서 이 말을 하면 어른들은 “네 놈이 뭐라고 어른 보고 절을 받으라 말라 해” 하면서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그때에는 ‘공연히 깐깐하기는’ 하면서 볼멘소리를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의 말씀이 맞았다. 이 말의 정확한 표현은 ‘절 올립니다(혹은 드립니다)’일 것이다. 그러니까 윗사람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으로 내가 하는 일을 알려 드리는 것이 맞는다는 것이다.

이것과 꼭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은 헤어질 때 앞뒤 다 생략하고 ‘가세요’라는 인사를 많이 한다. 이 인사도 이것만 들으면 명령조가 된다. 이 인사를 잘못 이해하면 ‘(그만 떠들고 빨리) 가라’는 식으로 들릴 수 있다. 나도 학생에게 이런 인사를 받고 기분 나쁜 적이 있어 잘 안다. 물론 대부분 경우 이 인사는 ‘조심해서 가라’는 뜻의 인사다. 그러나 여전히 명령조인 것은 맞다.

한국인들의 인사가 언제부터 이렇게 명령조 비슷하게 바뀌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전에는 분명히 이렇게 하지 않았다.

그때에는 언어 표현이 더 정확했다. 예를 들어 음식 먹는 것과 관련해 지금 한국인들이 많이 쓰는 ‘식사’라든가 ‘조식’, ‘회식’, 혹은 ‘외식’ 같은 단어들은 내게는 아주 어색하다. 표현이 조야해 문향(文香)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한국인의 문해력이 자꾸 떨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이렇게 사소하게 보이는 것을 가지고 트집 잡으면 ‘당신은 왜 쓸데없이 까다롭게 사느냐?’는 힐난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언어라는 것은 자꾸 변하는 것인데, 왜 자꾸 옛것만 고집하느냐고 할 것만 같다. 나도 이런 인사법이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알고는 가자는 게 내 생각이다.
2019-01-1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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