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차별 철폐’에 몸바친 긴즈버그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기존 판례 뒤집어“우리 목을 밟은 발 치워 달라” 아직도 회자
‘악명 높은 R·B·G’ 등 애칭… 청년층 열광
진영 막론 애도… 트럼프, 조기게양 지시
“美 진보 진영의 대모, 굿바이 긴즈버그”
미국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주변에 19일(현지시간) 마련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추모 장소에 한 여성이 헌화하고 있다. ‘미 진보 진영의 대모’,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불린 긴즈버그는 전날 췌장암 전이에 따른 합병증으로 워싱턴에 있는 자택에서 87세 나이로 별세했다. 추모 장소에 쓰인 ‘나는 반대한다’는 문구는 생전에 그가 소수자의 편에 서서 대법원에서 단호하게 ‘반대표’를 던졌던 것을 의미한다.
워싱턴DC EPA 연합뉴스
워싱턴DC EPA 연합뉴스
다수 의견에 굴하지 않고 늘 “나는 반대한다”며 당당히 소수 의견을 밀어붙인 그녀는 젊은이들 사이에선 ‘노토리어스(notorious·악명 높은) R.B.G’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록스타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고, 긴즈버그의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머그잔 등이 제작될 정도로 그의 존재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됐다.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꾼 그녀의 결기는 차별로 얼룩진 개인사에서 나왔다. 1933년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발군의 실력을 갖고도 숱한 차별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며 1956년 하버드 로스쿨에 전체 9명의 여학생 중 한 명으로 입학했지만, 원장으로부터 “남학생 자리를 빼앗으면서까지 들어온 이유를 말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고, 도서관 출입을 거부당하는 굴욕도 겪었다. 컬럼비아 로스쿨로 옮겨 공동 수석 졸업하지만 ‘유대인이자 여성이자 엄마’라는 이유로 로펌에선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의 일대기는 2018년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으로 제작됐다. 같은 해 다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에서 그는 “여성 대법관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한지 묻는 이들에게 나는 ‘9명이 될 때’라고 답한다. 그동안 대법관 9명이 모두 남성이었는데, 여성 대법관 9명은 어떤가”라며 반문한다.
그의 별세 소식에 진영을 막론하고 각계에서 애도가 잇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의 거인을 잃은 것을 애도한다. 대법원에서 보여 준 훌륭한 정신과 강력한 반대로 명성을 얻으신 분”이라고 추모하며 연방 건물에 조기 게양을 지시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는 “위축되지 않고 맹렬하게 모두를 위한 인권을 추구한 여성이었다”고 애도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우리가 그렇듯 미래 세대 또한 그녀를 지칠 줄 모르는, 굳건한 정의의 수호자로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의 별세는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고 슬퍼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2020-09-21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