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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만 한 잿덩이가 논 덮쳐” 쿠팡 옆 농민 속 타들어 간다

“벽돌만 한 잿덩이가 논 덮쳐” 쿠팡 옆 농민 속 타들어 간다

신동원 기자
신동원 기자
입력 2021-06-23 20:52
업데이트 2021-06-2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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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화재 인근 마을 2차 피해 심각

벼포기마다 검은 분진들 붙어 있어
“온종일 100ℓ짜리 봉투 3개 분량 치워
오염된 논 복구 얼마나 걸릴지 몰라”
인근 하천 물고기 수백마리 폐사까지

쿠팡, 의료비·농작물 피해 등 보상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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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경기 이천 덕평1리 논에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날아온 잿덩이들이 떠 있다.   덕평1리 주민 제공
23일 경기 이천 덕평1리 논에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날아온 잿덩이들이 떠 있다.
덕평1리 주민 제공
“논으로 날아든 벽돌만 한 잿덩이, 벼 포기마다 붙어 있는 검은 분진들. 올해 농사는 망쳤습니다. 오염된 논이나 밭을 복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누가 알겠습니까.”

23일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인 덕평1리 주민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김우영(57) 덕평1리 이장은 “잿덩이와 분진이 모두 화학물질이라 수확한 쌀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텐데 어떻게 팔 수 있겠냐”면서 “정부가 성분 분석을 한다고 채취해 갔으니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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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평1리 주민들이 모아 놓은 잿덩이들.  덕평1리 주민 제공
덕평1리 주민들이 모아 놓은 잿덩이들.
덕평1리 주민 제공
쿠팡 물류센터 화재는 5일 만인 지난 22일 완전히 진화됐지만, 논밭뿐 아니라 마을을 뒤덮은 검은 분진으로 인한 2차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지상 4층, 지하 2층의 거대한 물류센터 건물, 적재물 1620만개와 이를 포장하는 종이, 비닐 등이 타면서 내뿜은 유독성 연기뿐 아니라 분진 등이 물류센터의 주변 마을을 뒤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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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평1리 주민이 논에서 잿덩이들을 뜰채로 수거하고 있다. 덕평1리 주민 제공
덕평1리 주민이 논에서 잿덩이들을 뜰채로 수거하고 있다.
덕평1리 주민 제공
덕평리에서 태어나 40여년째 벼농사를 짓는 이대형(67)씨는 “어제 가족들과 함께 논에 떨어진 잿덩이를 100ℓ짜리 종량제 봉투로 3개 정도 건져 냈지만 아직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면서 “검은 분진들은 속수무책 그냥 두고 나왔는데 일부 논에서는 벼 포기가 누렇게 변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이번 화재가 국내 최고 품질인 이천 쌀의 명성에 흠집을 낼까 걱정된다”면서 “화재로 입은 유무형의 피해를 어떻게 ‘금전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추밭에서 만난 농민 김모(64)씨는 “화재로 인한 분진 등의 피해도 크지만 시커멓게 뼈대만 남은 물류센터를 철거하면서 생길 분진 등의 피해가 더 클 것”이라면서 “공기 좋고 물 맑았던 덕평리는 이제 사라졌다”고 했다.

이번 화재로 한동안 마을은 연기로 뒤덮였으며, 쿠팡 물류센터에서 500m 떨어진 비닐하우스는 단열재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잿덩이가 날아와 지붕에 지름 15㎝의 구멍이 나기도 했다. 일부 노인들은 매캐한 연기 등 유독가스로 건강 문제를 호소하며 병원을 찾기도 했다. 인근 하천에서는 물고기 수백 마리가 폐사하기도 했다.

이천시는 잿덩이와 분진 등 잔해를 수거해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에 성분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이천시 관계자는 “물류센터 주변 마을을 대상으로 피해를 조사하고 있다”면서 “화재는 완전히 진화됐지만, 유무형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는 몇 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쿠팡이 이천 마장면사무소에 설치한 덕평물류센터 주민피해지원센터에는 지난 22일 하루 동안 모두 150여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잿덩이와 분진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와 유독가스로 인한 주민 건강 피해 등이 주를 이뤘다. 쿠팡은 자체 조사를 거쳐 농작물 등의 피해와 의료비, 분진에 따른 비닐하우스나 차량 등 자산 훼손 등에 대해 보상할 방침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2021-06-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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