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예측·값싼 전기료가 낳은 전력 위기

빗나간 예측·값싼 전기료가 낳은 전력 위기

입력 2012-08-09 00:00
업데이트 2012-08-0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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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인 불볕더위에 전기 사용이 늘면서 예비 전력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전력위기는 가깝게는 날씨 탓이 크지만 정책의 실패가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장기 전력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고 전기사용을 부추기는 가격 정책으로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빗나간 장기 예측…즉시 대응 어려워 = 정부는 전력수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2년마다 향후 15년의 계획을 담은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한다.

이 계획은 2002년에 처음 발표됐고 2004년에 2차, 2006년에 3차, 2008년에 4차, 2010년에 5차 계획이 차례로 공표됐다.

이들을 살펴보면 수요 예측이 실제와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장기 예측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잘못된 가정을 토대로 발전소 등 공급 계획을 수립한 것이 결과적으로 전력 위기의 원인이 된 셈이다.

2006년 3차 계획에서는 최대전력수요가 2010년에 6천878만㎾, 2015년에 7천729만㎾, 2020년에 8천342만㎾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식경제부는 수요관리를 해서 이를 각각 6천461만㎾, 6천947만㎾, 7천181만㎾로 낮추겠다고 계획했다.

그런데 정부가 가능한 수요관리 수단을 총동원했던 6일 최대전력수요가 7천429만㎾를 기록해 2020년 예상치를 가뿐히 넘었다.

결국 5차 계획에서는 최대수요가 2015년 8천1만㎾, 2020년 8천923만㎾로 상향조정됐다.

그러나 장기 예측이 빗나가면 계획을 주기적으로 수정하더라도 충분한 전력 공급이 쉽지 않다.

원자력 발전소는 건설에만 5년 이상이 걸리고 부지 선정부터 준공까지 10∼1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설비 건설 기간은 이보다 짧지만 그래도 5∼6년 정도는 미리 계획해야 필요한 시점에 무리 없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싼 가격이 전기 사용 부추겨 = 전기요금 정책이 전력 수요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는 데 큰 이견은 없어 보인다.

석유나 가스 등 다른 에너지의 가격이 오르자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 수요가 늘었다.

9일 한국전력이 파악한 바로는 2002년과 비교할 때 작년에 전기요금은 21% 올랐는데 가스는 72%, 등유 145%, 경유는 165% 상승했다.

같은 기간 경유와 등유 소비는 각각 27%, 57%씩 소비가 줄었는데 전기 사용은 63%나 늘었다.

전력 수요자로서는 값싼 전기를 놔두고 다른 에너지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한국은 201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전기요금이 가장 싸다.

한국의 산업부문 요금을 100으로 볼 때 호주는 105, 미국 117, 캐나다 121, 영국 209, 일본 266, 이탈리아 445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나 생산현장에서는 유류로 가동하던 설비를 전기로 가동하는 사례가 늘었다.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해 한전에 비싸게 팔고 정작 자신이 필요한 전기는 한전에서 싸게 사서 쓰는 회사도 있다.

식당을 비롯해 자영업자는 가스 난로 대신 전기 패널이나 전기 난로를 선택했고 형편이 어려운 주민은 석유 보일러 대신 전기 담요를 썼다.

2008년 1월에 ‘동계 전력 피크’가 등장한 것은 난방 에너지원이 대폭 전기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작년 1년간 한전의 용도별 전력 판매량과 판매수입을 비교해보면 산업용 사용자가 저렴한 가격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린 것으로 나타난다.

전력 판매를 보면 산업용이 전체 사용량 가운데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산업용 전기 수요자는 전체 판매량의 55.3% 정도를 쓰지만 비용은 50.3%만 충당한다.

반면 주택용 전력 이용자는 14.0%를 사용하고 돈은 18.8%를 낸다.

사무실·상점 등에 사용되는 일반용도 사용량은 21.9%, 지급액은 24.9%이다.

산업용이 사용량에 비해 싼 편이고 주택용과 일반용은 상대적으로 비싸게 요금이 책정됐다.

산업용은 시간·요일·계절 등에 따라 차등 요금제를 적용하고 주택용에는 사용량에 따라 누진제를 적용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용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천㎾h당 평균 가격을 비교하면 주택용이 12만원으로 가장 비싸고 일반용이 10만2천원, 교육용이 9만4천원, 산업용이 8만1천원이다.

농사용은 4만3천원으로 산업용보다 싸지만, 전체 사용량의 2.5%에 불과하다.

<표> 2011년 용도별 전력 판매 현황 (자료: 한국전력)

┌─────┬───────────┬───────────┬─────┐

│ 구분 │ 전력 판매량 │ 판매수입 │1천㎾H가격│

│ ├─────┬─────┼─────┬─────┤ │

│ │ (천㎾H) │ 구성비 │ (백만원) │ 구성비 │ (만원) │

├─────┼─────┼─────┼─────┼─────┼─────┤

│ 주택용 │63,523,655│ 14.0% │7,621,964 │ 18.8% │ 12.0 │

├─────┼─────┼─────┼─────┼─────┼─────┤

│ 일반용 │99,504,065│ 21.9% │10,118,764│ 24.9% │ 10.2 │

├─────┼─────┼─────┼─────┼─────┼─────┤

│ 교육용 │7,568,016 │ 1.7% │ 712,751 │ 1.8% │ 9.4 │

├─────┼─────┼─────┼─────┼─────┼─────┤

│ 산업용 │251,490,64│ 55.3% │20,428,280│ 50.3% │ 8.1 │

│ │ 8 │ │ │ │ │

├─────┼─────┼─────┼─────┼─────┼─────┤

│ 농사용 │11,231,538│ 2.5% │ 479,851 │ 1.2% │ 4.3 │

├─────┼─────┼─────┼─────┼─────┼─────┤

│ 가로등 │3,145,499 │ 0.7% │ 274,239 │ 0.7% │ 8.7 │

├─────┼─────┼─────┼─────┼─────┼─────┤

│ 심야전력 │18,606,840│ 4.1% │1,011,202 │ 2.5% │ 5.4 │

├─────┼─────┼─────┼─────┼─────┼─────┤

│ 합 계 │455,070,26│ 100.0% │40,647,051│ 100.0% │8.9 (평균)│

│ │ 1 │ │ │ │ │

└─────┴─────┴─────┴─────┴─────┴─────┘

전력수요를 억제하려면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물가 안정이나 산업계 부담 경감이라는 명분에 밀리곤 했다.

한전은 올해 전기 요금을 올리려다 정부로부터 두번이나 거부당했다.

이 가운데 한번은 주택용을 동결하고 산업용 등을 큰 폭으로 올리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평균 4.9% 인상으로 마무리됐다.

수요를 억제하려면 사용자가 체감할 수 있도록 요금을 상당한 폭으로 올려야 하는데 인상률이 낮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요금인상으로 수요를 억제하려면 10% 이상 올려야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발전소 증설이 해답? 당장 대응은 절전뿐 = 발전소를 충분히 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발전 설비가 충분치 않아 예비 전력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정전 사태가 우려되는 만큼 수요관리에 엄청난 비용을 치르느니 용량을 키우자는 취지다.

그러나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예비율을 높이는 것은 그만큼 사용하지 않은 전력을 생산하는 셈이라 낭비라는 것이다.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더라도 유지·관리에 비용이 든다. 결국 예비율을 높이면 그만큼 전기요금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나 사회단체, 지역 주민의 반대도 있어 발전소를 지으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지경부는 100만㎾급 발전소 건설에 1조5천억원 이상이 들고 최소 5년이 필요하므로 단기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수요관리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전기연구원은 이 방식이 발전소 건설과 비교하면 8배 이상 경제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장기적인 해법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올여름 위기에 대응할 방법은 절전 외에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기온이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30도 이상이면 1도 상승할 때마다 전력수요가 100만㎾ 정도 상승하기 때문에 폭염은 티끌 모으기 식의 절전을 무력화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수요가 공급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면 정부는 단계적인 수요 감축 방안을 실시한다.

최악의 경우 대정전을 피하기 위해 지역별 순환단전을 할 수밖에 없다.

근래에는 전기 난방의 증가로 겨울철 최대전력수요가 여름을 능가해 겨울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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