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여자가 산다[buy] 기업이 산다[live]

[女 보는 눈 바꿔야 국가경제가 산다] 여자가 산다[buy] 기업이 산다[live]

이유미 기자
입력 2015-07-12 17:38
수정 2015-07-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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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여성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⑩ 소비 결정권은 이미 ‘여성시대’

#사례1.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위치한 A은행 영업점은 부촌(富村) 사모님들의 ‘사랑방’이다. 짬이 날 때마다 ‘취미생활’처럼 VIP 고객 부스를 찾아 자산관리 매니저의 상담을 받는 중년 여성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새로운 금융상품 소개를 담은 신문 기사를 오려 와 문의하거나 대여 금고에 귀중품을 넣으러 왔다가 예·적금 상품에 가입하고 가는 경우도 흔하다. 가끔씩 남편을 동반한 여성 고객도 눈에 띄지만 이 역시 남편 명의로 된 부동산을 사고팔기 위해 대출을 받으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상품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여성 고객들은 금융 업무를 꺼린다’는 금융권 속설은 이제 옛말이다. A은행 영업점 관계자는 12일 “자산관리 주도권을 여성이 쥐는 가정이 늘다 보니 영업점 방문 횟수도 여성 고객이 남성 고객보다 많고, 금융상품 이해도도 높다”며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잡아야 영업 실적을 올릴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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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2.
14년째 자동차 영업사원을 하고 있는 박동빈(39·가명)씨. 그는 매달 10여대의 차량을 꾸준히 판매하는 베테랑 영업사원이다. 박씨가 후배 영업사원들에게 강조하는 노하우 중 하나는 바로 ‘여심 공략’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자동차 판매대리점을 찾는 고객 중 남성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최근엔 10명 중 7~8명은 부부가 함께 나와 계약한다. 박씨는 “과거엔 엔진 성능이나 순간가속도 등 자동차 성능 위주로 제품을 소개했다면 최근엔 트렁크 수납 공간이나 열선 시트, 디자인 차별화 등 여성 고객들이 만족할 만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며 “맞벌이를 하며 차량을 함께 이용하는 부부가 늘어서이기도 하지만 차량 구매 최종 결정은 결국 여성이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 전반에 여풍(女風)이 거세다. 교육·의류·식품 등 전통적인 여성 소비 영역에서 벗어나 주택·자동차·금융상품 등 남성의 소비 영역까지 여성들이 장악하고 있다. 일찍이 미국계 컨설팅 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은 모든 영역의 소비 결정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커졌다며 “분홍색으로만 치장하면 여성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일갈했다. 연간 20조 달러가 넘는 여성 소비 지출이 전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소비 주도권은 여성에게 넘어간 지 오래다. 신한카드가 올해 1월 빅데이터를 활용해 전체 회원(약 2200만명)의 업종별 카드결제 현황을 집계한 결과 소비시장에서 여성의 입지 확대가 두드러진다. 남성과 여성의 전체 카드 결제 금액은 각각 4조 7942억원과 3조 8949억원으로 여전히 소비시장에서 남성 비중(55.2%)이 여성(44.8%)보다 높다. 하지만 2012년 1월에 견줘 보면 대부분 업종에서 여성 고객의 소비 지출이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여성 고객은 여행·교통(33.9%), 전자상거래(27.5%), 외식(24.6%), 문화(15.4%) 등의 업종에서 남성의 소비 증가율을 앞질렀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회가 복잡 다변화되면서 자녀 양육과 관련된 교육이나 재테크 수단이 된 주택 장만 등 소비에도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며 “가정 내 최고경영자(CEO)인 주부들에게 소비가 살림살이의 확장된 영역이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용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남편과 자신의 소득을 모두 관리하는 여성들의 구매력도 과거보다 두 배로 확대된 셈”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산업계도 여성 고객을 위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여성 고객에겐 배타적이었던 금융권 역시 여성 전용 상품들을 선보이며 주거래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하나은행이 2011년 1월 출시한 여성 특화 상품 ‘씨크릿 적금’은 올 6월 말 기준 17만 7000좌(수신 잔액 1조 1690억원)가 판매되며 히트상품에 이름을 올렸다. 여성 고객이 가입 당시 약정한 자기투자(뷰티숍·의류쇼핑·피트니스센터 등 영수증 지참)나 자기관리(체중관리·금연 등)를 이행하면 최고 연 0.3% 포인트 우대금리를 주는 방식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집안에서 자산관리를 주도하는 여성 고객들을 특화 상품으로 먼저 유치해 은행 호감도를 높이면 주거래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상품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차종 색상마다 특별한 이름을 붙인다. 예를 들어 현대차 최고 베스트 셀러인 ‘쏘나타’의 경우 아이스 화이트·다크호스·나이트 스카이·레밍턴 레드·팬텀 블랙 등의 이름이 있다. 색상에 민감한 여성 고객을 겨냥한 ‘이름 마케팅’이다.

여성 고객 비중이 높은 생활가전 업계에서는 여성을 겨냥한 감성 마케팅을 활용해 틈새시장을 개척한 사례도 있다. LG전자의 ‘포켓 포토’가 대표적이다. 이 상품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즉석에서 출력할 수 있는 휴대용 사진 프린터다. 2012년 9월 출시돼 지난해 6월 국내에서 누적 판매 50만대를 돌파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이 상품의 주요 소비 계층은 20~30대 여성”이라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을 종이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여성 고객들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겨냥해 상품을 기획했는데 새로운 판매 영역을 개척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상품 기획 단계부터 여성 인력을 투입해 시장 공략에 공들이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현대건설은 2008년부터 주부 평가단(힐스테이트 스타일러)을 도입했다. 7기까지 운영하면서 연간 100여건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 중 상당수가 실제 주택 설계에 반영됐다. 베란다 세탁기 옆에 손빨래가 가능한 싱크대 및 수납장을 설치한 ‘원스톱 세탁실’과 욕실에 드라이기 수납장 등 실생활과 밀접한 아이디어가 대부분이다. 박원철 현대건설 차장은 “주택 계약 시 90%는 주부가 구매를 결정한다”며 “수납 공간이나 자녀방 평면, 실내 마감재, 확장 면적 등을 꼼꼼하게 따지는 까다로운 주부들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주부 평가단이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지난 3월 출시한 ‘대신UBP아시아컨슈머펀드’는 2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화장품, 영화, 바이오, 외식 등 여성의 소비 지출이 두드러지는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이다. 대신자산운용은 이 상품을 기획하기 위해 김미연 리서치본부장을 올 초 영입했다. 김 본부장은 “여성 구매력 상승과 맞물려 나타난 새로운 소비 트렌드와 이에 부합하는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있다”며 “가정주부의 시각으로 여성들에게 각광받는 상품이나 기업을 선별했던 것이 높은 수익률에 도움이 됐다”고 비결을 밝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3월 “앞으로 그룹 내 임원 10명 중 3명을 여성으로 채우겠다”며 ‘위미노믹스’(Womenomics) 경영을 선언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위미노믹스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소득 증가로 여성이 경제·산업계의 주역으로 부상한다는 의미다. 여성 소비자의 입지가 절대적인 유통업계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여성 인력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강민정 온콘텐츠 대표는 “여성 인구 증가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산되는 추세에 따라 여성 중심의 소비 문화는 더욱 심화·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여성 고객을 사로잡는 기업이 21세기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2015-07-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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