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서 ‘뉴 롯데’ 비전 제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11일 신 회장의 기자회견은 명목상으로는 국민 앞에 사과하는 자리였지만 실제 내용은 신 회장 중심의 ‘뉴(New) 롯데’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신 회장은 앞으로 롯데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처음으로 독자적인 경영계획을 밝히면서 한·일 롯데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자는 자신임을 강조하기도 했다.세 번째 대국민 사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개 숙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롯데그룹의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드러나면서 롯데를 만들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한 신격호 총괄회장의 경영방식에 문제가 제기됐다. 신 총괄회장은 일본 내 비상장사를 중심으로 한·일 롯데그룹을 지배해 롯데그룹은 1인 황제경영에 따른 폐쇄적인 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신 회장이 그리는 롯데의 미래는 아버지가 60여년간 만들어 온 롯데와 다른 개방된 모습이다.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상장 추진과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복잡한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줄여 롯데그룹을 투명하게 경영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 회장은 한·일 롯데그룹 경영권에 대한 자신감도 보였다. 신 회장은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버지, 형과) 언제든 대화할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도 “사업에 대한 안정성을 생각해 경영과 가족의 문제는 별도라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 발언은 앞으로 롯데에서 신 총괄회장과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일 양국 롯데그룹의 임직원들이 그를 지지하는 만큼 신 회장을 중심으로 롯데가 바뀌어 나갈 것임은 분명하다. 다만 신 회장이 발표한 위기 극복 대책이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노동개혁이 발표되자마자 롯데그룹은 2018년까지 2만 4000명의 청년 정규직을 채용하겠다며 정부 눈치 보기에 나섰다. 하지만 신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지주회사 전환에는 대략 7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며 연구개발과 신규채용 같은 그룹의 투자활동 위축이 우려된다”고 말하며 여론에 떠밀려 지배구조를 바꾸려 한다는 인상을 줬다.
롯데가 일본기업으로 낙인찍혔다는 점도 신 회장이 한·일 롯데그룹을 동시에 경영하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 상장을 추진하려는 호텔롯데의 일본 지분율이 100%에 가까워 상장만으로 지분율을 낮추기는 어려워 일본 기업이라는 인식은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또 형인 신 전 부회장과의 경영권 다툼이 소송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일본 법무성에 따르면 지난 10일 누군가 호텔롯데의 최대주주인 L투자회사 9곳에 대해 등기 변경을 신청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이 재변경을 요청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송을 준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2015-08-12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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