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깨끗한 벼슬아치를 청백리(淸白吏)라 했다. 공직수행 능력과 청렴성, 근검성, 도덕성, 경효(敬孝)와 인의(仁義) 등의 덕목을 겸비한 벼슬아치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시대 청백리가 오늘의 시점에서 왜 그리워지는 것일까. 작금에 공직자들의 비리가 줄을 이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향수를 느끼게 된다. 조선조 청백리에 오른 이가 대동장고(大同掌攷)에는 121명,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14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리대감이라고 불린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네 번이나 재상을 지냈지만 헌 집은 겨우 비를 피할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호화로운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으나 백성의 편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백성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런 위정자가 어찌 청백리가 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오리대감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웬 까닭일까. 그것은 오늘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너무 부패했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의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다.
시인 정일남
조선시대 청백리가 오늘의 시점에서 왜 그리워지는 것일까. 작금에 공직자들의 비리가 줄을 이어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보고 향수를 느끼게 된다. 조선조 청백리에 오른 이가 대동장고(大同掌攷)에는 121명,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142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오리대감이라고 불린 이원익(李元翼·1547~1634)은 네 번이나 재상을 지냈지만 헌 집은 겨우 비를 피할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호화로운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으나 백성의 편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백성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런 위정자가 어찌 청백리가 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오리대감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웬 까닭일까. 그것은 오늘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이 너무 부패했기 때문이다. 옛 선비들의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다.
시인 정일남
2012-03-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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