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빈곤 그리고 자존감/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글로벌 시대] 빈곤 그리고 자존감/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입력 2013-05-06 00:00
업데이트 2013-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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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1995년 4월 나는 국제 비정부기구(NGO)의 자원봉사자로 르완다 난민들이 있는 콩고 고마지역에서 학교지원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소년을 만났다. 입에 무엇인가를 물고 있기에 자세히 보았더니 옥수숫대를 빨고 있었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 즐겨 먹던 간식이었다. 40년의 세월과 아프리카라는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는 동질감에 반가운 표시를 했더니 그 소년이 손을 내밀어 먹고 있던 옥수숫대를 건네주었다.

손때가 묻어 있었지만 소년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어 기쁘게 한 입 베어 먹었더니 소년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곳은 돌밭에 설치된, 80여만명이 수용되어 있던 난민촌이었다. 먹을 것이라고는 잘해야 하루 한 끼 영양 죽을 얻어먹는 일이었다. 소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장 소중한 선물을 처음 보는 나에게 주었고 그 일로 무척 기뻐했다.

사회복지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결국 사람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의 자존감에 치명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빈곤의 문제이다. 빈곤은 굶주리고, 집이 없고, 치료받지 못하고, 학교에 갈 수 없고, 직업이 없고, 자유와 권리가 박탈된 것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결핍되거나 부족한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6초마다 한 명의 아이가 굶주림으로 죽고(2006년), 세계 28억의 인구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존을 연명하고 있고(2001년), 매일 2만 5000명이 기아 또는 이와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하고(2006년), 9억 2300만명이 굶주림으로 고통당하고 있다(2008년)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기아·학대·빈곤·부모 사망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8003명(2012년), 독거 어르신이 93만 1283명(2008년),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절대소득 빈곤가구율(시장소득, 가구기준)이 19%에 이른다. 동해복지관의 경우 매일 어린이와 어르신 230명을 대상으로 도시락 배달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은 따듯한 밥과 맛있고 영양가 있는 반찬을 원하겠지만 이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반가운 인사와 위로의 말 한마디로 자존감을 지켜주는 일일 것이다.

경제수준의 차이로 빈곤의 정도와 영향력은 국내와 국제적 상황은 많이 다르다. 정부 입장에서는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을 최고의 복지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대상자의 입장에서는 복지서비스의 양적 성장과 더불어 자존감을 지켜주는, 즉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기대하고 있다. 빈곤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복지서비스를 통해 자존감이 회복되고 당당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는 빈곤으로 인한 배고픔을 면하게 해주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복지 혹은 국제개발협력사업을 시행함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요구된다. 시대가 달라도, 사는 곳이 달라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로 태어났다. 공여와 수혜의 개념에서 나눔의 개념으로 우리의 사고가 보다 열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나누어 주고 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며 기뻐하던 르완다 난민 소년, 세계시민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기를 빌어 본다.

2013-05-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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