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웅의 공정사회] 가을편지

[문현웅의 공정사회] 가을편지

입력 2020-11-04 17:32
업데이트 2020-11-05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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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웅 변호사
문현웅 변호사
사랑하는 아들아, 참 예쁜 가을날 우리가 좋아하는 쌀국수를 맛나게 먹고 근처를 산책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눈 그날이 오늘 아침 문득 떠올라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시작했단다.

우리가 참 좋아하는 그 산책길은 다른 계절도 그렇지만 가을날에 무척 잘 어울리는 길이지. 잘 가꾸어진 정원을 갖춘 단독주택들이 모여 있고 근처에 나지막한 산도 있어 우리는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나면 꼭 그 길을 산책하곤 했었어.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누던 단골 대화가 이런 단독주택에서 살아 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그날은 그동안 보이지 않던 너무 멋진 집이 새로 지어져 우리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단다. 집 앞에 주차된 최고급 외제차도 더해져서 말이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마냥 부럽기만 하더구나.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그날 저녁은 우리 식구 모두 참 좋아하는 묵은지 등갈비 찜을 맛나게 먹으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었어. 너와 너의 누나는 쿵짝이 잘 맞아 그날도 아빠와 엄마를 흐뭇하게 만들었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저녁 식사시간이었지만 이런 행복한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짐에 참 감사한 순간이었어.

그리고 아빠는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낮에 보았던 그 멋진 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복감이 지금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을 결코 넘어서지는 못할 거라고 말이야. 그 집을 보며 부러웠던 마음도 잠시, 인생에 있어 그런 외적인 부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려는 내적인 부분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지.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한 너에게 장래 진로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아빠는 잘 알고 있단다.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무엇보다 지금 당장 어떤 대학 무슨 과를 전공해야 하는지 뚜렷한 답이 없어 마냥 답답해하는 너의 모습도 여러 번 목격했었어. 그날도 너는 그런 선택의 어려움에 대해 식사시간이 마무리될 즈음 조용히 속마음을 털어놓았었지.

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아빠는 먼저 짠한 마음이 들었단다. 소위 말하는 험난한 인생 여정이 벌써부터 너에게도 엄습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많이 되고 말이야. 그런데 오십 평생을 산 아빠의 인생을 돌이켜 보니 우여곡절은 참 많았지만 그런 머리 아픈 고민이 어찌어찌 다 순리대로 해결된 것 같아 사실 좀 놀랍기도 하단다. 지나고 나니 그런 고민들도 별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 말이야. 물론 당시는 정말 너무나 큰 고민이었고 지금 너의 고민도 너에게는 가장 큰 숙제일 거라는 점은 아빠도 잘 알고 있단다.

아빠는 그동안 정말로 많은 계획을 세우며 살아왔어. 그러한 계획들 속에서 아빠가 예상한 흐름대로 인생이 흘러간 적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참 많았단다.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그때그때의 계획과 선택도 무척 중요하지만 계획과 선택이 지향하는 목표가 더 중요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그러니까 어떤 선택을 할까 하는 고민보다 본질적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이냐 하는 고민이 더 중요하고 그런 본질적 고민으로 인해 선택의 부담을 오히려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거야.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우리들 인생의 본질적 목표는 온전한 자유인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시처럼 말이야.

그런 온전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인생길이고 그런 인생길에 놓여 있는 선택의 순간들은 모두 온전한 자유인이 되기 위한 지난한 여정 아닐까 싶어. 지금 닥친 너의 선택에 대한 고민을 온전한 자유인이 되는 데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은 무엇일까 하는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그 지난하기만 한 여정이 조금은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단다.

모처럼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 꼰대 같은 말만 되풀이한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하구나. 그렇지만 너에게 이 약속만큼은 분명히 할 수 있을 거 같아. 너의 선택이 무엇이든 언제나 아빠는 너를 믿고 응원할 거란 약속 말이야.
2020-11-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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