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광해(光海)의 정치, 계영배(戒盈杯)의 정치/오일만 정치부 차장

[데스크 시각] 광해(光海)의 정치, 계영배(戒盈杯)의 정치/오일만 정치부 차장

입력 2012-11-23 00:00
업데이트 2012-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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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정치부장
오일만 정치부장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는 지금 야권 단일화라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일궈 놓은 인생과 정치생명이 걸린 건곤일척의 결전이다. 두 후보 모두 사람인지라, 지금쯤은 격렬한 전의를 불사르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정치 무대에서 끌려 내려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문 후보나 안 후보 모두 1년 사이 정치권에서 호출받은 구원투수들이다. 민주통합당 문 후보는 총선에 이어 대권까지 거머쥐려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안 후보는 무당파들의 정치변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기존 정치권에 이골이 난 수요자들의 입장에선 호기심을 자극할 ‘신상품’이고 이들이 던진 대선 출사표에도 비전 제시와 정치 쇄신의 열망이 가득찼다. 이들의 초심은 거칠고 척박한 정치현실에 착근해 견고한 지지율로 변했다. 야권 단일화의 두 주역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누구나 초심을 온전하게 보존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더욱이 대권 주변에 들러붙어 있는 온갖 탐욕꾼에다 강파른 진영논리가 판치는 대선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정치의 본질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인데 자기 욕심을 버리면 채워지는 묘한 이치를 갖고 있다. ‘버리면 이기는’ 비상식의 교훈이다. 이른바 계영배((戒盈杯)의 정치다.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가득 채우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소설 상도(商道)의 실제모델인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아끼던 계영배(戒盈杯)에 새겨진 문구라고 한다.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린다. 넘침을 경계하고 과욕을 경고하는 잔이다.

대선 본선에 오를 야권 티켓은 단 한 장이다. 문-안 중 누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든, 승패를 떠나 한국 정치 발전이란 측면에서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 유효기간이 다 돼가는 1987년 체제 극복과 글로벌 시대의 정치 쇄신 모두 대한민국의 절박한 과제다.

그럼에도 최근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두 후보가 보인 정치력 부재와 리더십에 실망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결단의 시기를 놓치고 정치공학적 승부근성만 부각되는 모양새다. 자신들이 그렇게 경멸한다던 기득권자의 욕망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든다. 아름다운 단일화는 승자의 몫이 아니다. 기꺼이 패자가 되겠다는 ‘양보의 정치’에서 감동의 정치가 시작되고 승리의 싹이 돋아나는 것이다.

중국 현대사의 주역인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사례를 보자. 이들은 애증의 관계다. 저우는 원래 마오의 상관이었고 노선 대립도 심각했다. 중국 공산당이 궤멸 직전인 대장정 도중에 저우는 부하인 마오를 주석으로 옹립한다. 1935년 1월 쭌이(遵義) 회의에서다. 저우는 기꺼이 조연의 역할을 떠맡았다. 두 거두의 화합이 없었다면 지금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절도 두고두고 곱씹을 대목이다. 개혁 추진세력을 통합하지 못했고 스스로 분열의 길을 자초했다. 민주화 세력의 기둥인 고(故) 김근태 전 의원과 결별했고 호남 지지기반의 이탈도 뼈아픈 대목이다. 구시대의 막내로 정치무대에서 내려온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자업자득적 측면이 있다.

역사적 닮은 꼴은 광해의 정치다. 문 후보가 영화 ‘광해’를 보면서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지만 사실 광해의 정치는 분열의 정치로 기록된다. 광해군을 옹립한 동인계열의 대북(大北)은 이후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小北) 등의 협력을 거부하며 골수파로 변한다. 이들이 광해의 정치를 주무르지만 아집과 전횡으로 일관했다. 대동법 확대와 명·청 중립외교 등으로 새로운 조선을 염원했던 광해의 비운도 이런 맥락이다.

새 시대 맏형과 구시대 막내의 길이 두 후보 앞에 놓여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상생과 공멸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국민들은 묻는다. 당신들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oilman@seoul.co.kr

2012-11-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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