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아디오스’(2017)에는 1990년대 말부터 큰 인기를 얻은 쿠바의 베테랑 밴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고별 공연이 담겨 있다. 그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대통령은 이들의 연주를 맞이하는 환영사에서 재미있는 농담을 했다. “예전부터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팬이었습니다. 그들의 CD도 샀어요. 아, 요즘 세대들은 CD가 뭔지 잘 모르시겠군요. 손바닥만 한 크기인데, 원형의 작은 플라스틱판으로 가운데 작은 구멍이 뚫려 있죠….”
CD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의 세대들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감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오랜만에 자동차를 바꿔 보려고 전시장에 가서 시승을 해 보는 순간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이 차에는 시디플레이어가 없나요?” “네, 몇 년 전부터 장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좀 불편하겠다고 말했지만, 판매 사원들은 내 아쉬움에 크게 공감하지 않았다. 대부분 ‘그게 왜 필요하지?’란 표정들이었다.
운이 좋게도 각종 녹음 기록 매체를 사용할 기회를 골고루 가진 세대였다. 10대 초반에 CD가 나타났으니 LP에도 익숙하고, 차갑고 비인간적인 소리라는 비판을 받던 천덕꾸러기 CD가 차츰 자리를 잡고 인정받는 과정도 보아 왔다. 요즘 세대들에게 CD보다도 훨씬 낯설 법한 레이저디스크(LD), DVD를 거쳐 블루레이 등이 친숙해지기까지의 기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너무 둔한 것인지 모르지만, ‘동그라미’ 모양이 아닌 USB나 파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게 아직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쩐 일인지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대부분은 고급 오디오나 최신 재생 기기에 큰 관심이 없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객석에 앉아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이 ‘어떻게 들리나’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리를 만드나’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내 경우는 음악을 재생하는 방법이 편할수록 좋다. 깨끗한 음질로 들을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인데, 그럼에도 조그만 컴퓨터 칩이 내 마음속에 음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내 것, 내 음악으로 ‘소유’한다는 느낌이 적어서다.
최근 LP의 새로운 유행은 LP 생산이 중단한 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에게 이른바 ‘애착’이라는 개념을 심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LP를 다뤄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지만, 이 플라스틱판은 관리가 꽤 까다롭다. 먼지를 매번 떨어내야 하고,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여러 겹의 종이와 비닐로 감싼 채 보관해야 한다. 또한 플라스틱 위에 새겨진 미세한 골을 바늘을 통해 ‘긁는’ 방식으로 재생이 이루어지기에 한계 수명이 존재한다. 여러 장 쌓이면 이사나 이동할 때 큰 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을 감수하며 내 방 한쪽 수납장에 꽂아 놓은 음반은 그 순간 비로소 내 것, 내 음악이 된 듯 뿌듯함을 준다. 정성껏 닦아 반짝거리는 LP 판의 질감을 느끼고, 오래 간직하기 위해 비닐로 조심스럽게 감싼 재킷 사진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만족감은 꼭 예전 세대들의 추억만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음악을 왜 ‘저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세대도 있으며, 듣고 싶을 때 언제든 들을 수 있는 ‘공유’의 개념이 더 중요해진 것도 알고 있다. 유행이나 정보와 달리 자신만의 ‘취향’은 공유될 수 없다. 음악 감상이란 자신의 내면을 열고 은밀한 자아와 소리가 만나는 매우 개인적인 행위이며, 음악을 듣고, 알고, 사랑하고, 내 것이 되게 만드는 과정은 오로지 나만의 방식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스마트폰을 열면 나보다 훨씬 똑똑한 인공지능이 추천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이 기다린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내가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애정과 추억, 이야기들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운이 좋게도 각종 녹음 기록 매체를 사용할 기회를 골고루 가진 세대였다. 10대 초반에 CD가 나타났으니 LP에도 익숙하고, 차갑고 비인간적인 소리라는 비판을 받던 천덕꾸러기 CD가 차츰 자리를 잡고 인정받는 과정도 보아 왔다. 요즘 세대들에게 CD보다도 훨씬 낯설 법한 레이저디스크(LD), DVD를 거쳐 블루레이 등이 친숙해지기까지의 기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너무 둔한 것인지 모르지만, ‘동그라미’ 모양이 아닌 USB나 파일로 음악을 듣는다는 게 아직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쩐 일인지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대부분은 고급 오디오나 최신 재생 기기에 큰 관심이 없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객석에 앉아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이 ‘어떻게 들리나’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리를 만드나’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내 경우는 음악을 재생하는 방법이 편할수록 좋다. 깨끗한 음질로 들을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인데, 그럼에도 조그만 컴퓨터 칩이 내 마음속에 음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무엇보다 내 것, 내 음악으로 ‘소유’한다는 느낌이 적어서다.
최근 LP의 새로운 유행은 LP 생산이 중단한 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에게 이른바 ‘애착’이라는 개념을 심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LP를 다뤄 본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지만, 이 플라스틱판은 관리가 꽤 까다롭다. 먼지를 매번 떨어내야 하고,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여러 겹의 종이와 비닐로 감싼 채 보관해야 한다. 또한 플라스틱 위에 새겨진 미세한 골을 바늘을 통해 ‘긁는’ 방식으로 재생이 이루어지기에 한계 수명이 존재한다. 여러 장 쌓이면 이사나 이동할 때 큰 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을 감수하며 내 방 한쪽 수납장에 꽂아 놓은 음반은 그 순간 비로소 내 것, 내 음악이 된 듯 뿌듯함을 준다. 정성껏 닦아 반짝거리는 LP 판의 질감을 느끼고, 오래 간직하기 위해 비닐로 조심스럽게 감싼 재킷 사진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만족감은 꼭 예전 세대들의 추억만은 아닐 것이다.
도대체 음악을 왜 ‘저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세대도 있으며, 듣고 싶을 때 언제든 들을 수 있는 ‘공유’의 개념이 더 중요해진 것도 알고 있다. 유행이나 정보와 달리 자신만의 ‘취향’은 공유될 수 없다. 음악 감상이란 자신의 내면을 열고 은밀한 자아와 소리가 만나는 매우 개인적인 행위이며, 음악을 듣고, 알고, 사랑하고, 내 것이 되게 만드는 과정은 오로지 나만의 방식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스마트폰을 열면 나보다 훨씬 똑똑한 인공지능이 추천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이 기다린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내가 사랑하는 음악에 대한 애정과 추억, 이야기들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2018-12-25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