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철문으로 만든 얼굴들/박상순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철문으로 만든 얼굴들/박상순

입력 2018-03-02 17:56
업데이트 2018-03-0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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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진/화실에서(130×130㎝, 캔버스에 종이와 아크릴)
문학진/화실에서(130×130㎝, 캔버스에 종이와 아크릴) 1924년 서울 출생. 1995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수훈.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
철문으로 만든 얼굴들/박상순

여기, 철문으로 만든 얼굴이 있다.
철문을 뜯어서 만든 얼굴이 있다.

작은 철문으로 만든 얼굴, 큰 철문으로 만든 얼굴
모두, 검게 칠한, 검은 얼굴들

처음에는 옥상에, 복도에
다음에는 문밖에, 거리에
이제는, 산에도, 바다에도

무거운 철문을 뜯어서 만든, 무거운,
딱딱한, 차가운, 너무 무거운,
여기, 철문으로 만든 얼굴들이 쌓여 있다.

여기저기 철문으로 만든 얼굴들이 떠돈다. 그 얼굴들은 제가 저지른 범죄를 모르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정치가의, 경제인의, 예술인의 이름으로 알려진 그 검고 끔찍한 얼굴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숨이 막혀 비명을 지른다. “딱딱한, 차가운, 너무 무거운” 얼굴들이 내뱉는 말은 명쾌하고 화려하다. 그들은 늘 옳은 말로 남의 흠을 들춰내고 세상의 거짓들을 고발했다. 그들은 세상을 다 아는 듯이 판단하고 말하지만 정작 제 얼굴이 “철문을 뜯어서 만든” 건 줄을 모른다. 아침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쳐다본다. 혹시 내 얼굴도 철문을 뜯어서 만든 얼굴은 아닐까 두려움에 떨며!

장석주 시인
2018-03-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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