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희태 봐주기로 망신 자초한 검찰

[사설] 박희태 봐주기로 망신 자초한 검찰

김성수 기자
입력 2015-02-17 22:26
수정 2015-02-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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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그제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2단독 박병민 판사는 박 전 의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박 전 의장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범죄자를 처벌하는 게 주된 임무인 검찰은 통상 법원이 감형을 해서 양형을 할 것으로 보고 구형을 높게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다.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검찰의 구형보다 더 높은 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벌금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박 전 의장의 죄질로 볼 때 벌금형으로 그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검사 출신인 박 전 의장에 대해 ‘봐주기’ 구형을 했다는 비판과 함께 망신을 자초했다. 성범죄 변호사들에 따르면 일반인이 박 전 의장과 같은 성추행을 했다면 징역 10개월에서 1년까지 구형이 가능하다고 하니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들어도 검찰은 할 말이 없게 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한 뒤에도 박 전 의장을 한 차례도 소환하지 않은 채 두 달 가까이 기소를 미뤄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설이 빈말이 아님을 보여 주기도 했다.

성추행은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치명적인 범죄다. 불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중범죄로 다스려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요구되는 사회지도층 인사의 성범죄의 경우 더욱더 엄하게 처벌해야 마땅하다. 박 전 의장은 골프 경기가 시작될 때부터 전반 9홀이 끝날 때까지 여성 캐디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피해 여성이 느꼈을 성적 수치심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피해자와 합의한 점이 인정되고 동일한 전과가 없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벌금형으로 끝내고 어물쩍 넘어갈 만큼 가벼운 사안은 결코 아니다. 재판부는 “고소를 취하해도 성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을 개정한 것은 엄격한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 의사를 반영한 것”이라며 성폭력이 중대한 범죄임을 새삼 강조했다. 그런 관점에서도 징역형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검찰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지금 검찰의 신뢰는 온갖 비위와 비리, 추문으로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태다. 검찰의 통렬한 자성과 성찰이 요구된다.
2015-02-1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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