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고질적인 문제는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우선 수시로 발생한 문제에 대한 땜질식 처방으로 만들어져 ‘분절적’이다. 그리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복지보다는 ‘민간에 의존’한 복지 형태가 지배적이다. 아동정책과 아동보호 분야는 이러한 문제가 심각하게 지속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이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아동은 마지막 식민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을 확대한다고 한다. 그동안 민간에 의존해 왔던 취약아동 보호에 대한 공공성도 강화한다. 오는 7월에는 그동안 분절적으로 이루어져 온 아동보호 관련 중앙 기관들을 통합한 ‘아동권리보장원’도 설립된다. 이를 통해 아동복지 전달체계 및 정책 총괄 지원, 사업평가, 아동 중심의 이력관리 전산시스템 관리 등 중앙의 역할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 역할이 빛을 발하려면 중앙의 행정조직 설립만이 아니라 보호자가 없는 아동들에게 보호자의 역할을 대신 해 줄 실질적인 ‘사회적 부모’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회적 부모는 어떤 이해관계에도 구애받음 없이 오직 ‘아동의 최선의 이익’만을 고려해야 한다. 이 역할을 누가 수행할 수 있을까.
지자체가 보다 책임의식을 갖고 공적 보호체계를 확충해야 하고 그 체계 내에 전문 인력들이 포진돼야 한다. 지자체가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 지자체는 ‘원가정 보호 우선, 아동의 최선의 이익 고려’의 원칙을 명확히 수립하고 모든 요보호아동을 직접 챙겨야 한다. 또한 아동이 오랜 기간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지자체 아동복지공무원이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는 ‘전문직공무원’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동정책 예산의 획기적인 증가가 필요하다. 이제 말만 국가 책임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용기를 주지 않는다면 아동정책으로서의 존재가치가 떨어진다. 어린 왕자의 한 구절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어른들은 누구나 아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우리 사회에 이를 기억하는 어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2019-05-01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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