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한의 종횡무애] 바보야, 문제는 남자야

[조이한의 종횡무애] 바보야, 문제는 남자야

입력 2020-05-12 17:30
업데이트 2020-05-13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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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한 대학에서 10년 정도 ‘미술과 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처음엔 남학생이 80~90퍼센트까지 갔다. 그들은 ‘야한 미술작품을 보는 건 줄 알았다’고 했다. 제목에 낚인 거다. 첫날부터 젠더 문제를 다룬다고 밝혔는데도 그만두는 남학생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학생이 줄고 여학생이 대부분이 됐다. 또 있다. 강사법에 대비한 대학들이 교양수업을 대폭 없애면서 들을 게 없어져 버린 학생들이 수강신청 경쟁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들어왔다가도 젠더 수업인 걸 알면 포기했다. 그 무서운 수강신청 대란 속에서도 젠더 수업은 기피 대상이었던 것이다.

토론 시간에 학생들끼리 언성이 높아지는 일은 다반사고, 아예 ‘페미’들을 ‘박살’내 주겠다고 다짐하고 들어온 남학생도 있었다. 이 수업에 들어오는 여학생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게 왜 협박이 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 수업을 듣는다는 건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의미였고, ‘너도 페미니스트냐’라는 물음은 ‘너도 메갈이냐’라는 의심이었으며 그게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협박이라는 걸 젊은 여성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남학생들의 더디거나 후퇴하는 행보에 비해 여학생들의 전진 속도는 놀라웠다. 페미니스트가 된 후 남친과 헤어지거나 예능프로도 즐겁지 않다며 슬퍼하긴 했지만 그녀들은 분명 달라졌다. 2016년부터는 학기가 끝나면 소모임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그들은 독서모임을 지속하고 이슈가 생길 때면 행동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른 학교의 수업에서도 여전히 학생들은 소문과 편견에 조심스러워했고 남학생들은 거의 전멸이며 수강하는 걸 비밀로 하기도 했다. 사회도 여전했다. 성폭행, 성희롱, 스토킹 사건들은 경미한 처벌에 그치거나 무시되다가 급기야 ‘n번방’ 사건이 터졌다. 여전히 여성에게 밤길은 위험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연애도 의심해야 하며 거리나 가정이나 안전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묻는다. “세상이 바뀔까요?” 그 질문 끝에는 변하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이 묻어 있다. 하지만 세상을 좀 오래 산 나는 느낀다. 세상은 변하고 있으며 변했다는 사실을. 젊은 그녀들은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이 든 나는 수시로 젊은 그들로부터 배우고 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에 대한 공격도 거세졌지만 동시에 세상은 여성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는 것도 변화다. 이제 여성 혐오 발언을 공적인 장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면 프로그램에서도 하차하고 노래 가사도 바꿔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여성은 배워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도 알아서 배운다. 문제는 남자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남자가 배우고 바뀌어야 한다. 하! 그런데 어쩐다. 전지전능한 신도 당나귀와 바보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른 건 몰라도 배움은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것을!

2020-05-13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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