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벼 반, 피 반/이경형 주필

[길섶에서] 벼 반, 피 반/이경형 주필

입력 2015-09-30 22:58
수정 2015-09-3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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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람이 삽상하다. 동이 틀 무렵,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냉기까지 품었다. 저 멀리 산 능선 위로 붉은 해가 치솟는다. 황금빛으로 물든 들판 길을 걷는다. 고개 숙인 벼들이 추수를 기다린다. 달포 전만 해도 볏논은 초록색 한가지였지만, 이제는 논마다 색깔이 다르다.

올벼는 노란색에 갈색이 감돌고, 찰벼는 더 검어 보인다. 일반 볏논도 가까이서 보니 색깔이 다 달라 보인다. 대부분의 논은 잘 영근 벼 이삭으로 황금빛 단색이다. 반면 ‘벼 반, 피 반’의 어떤 논은 노란색 벼의 1층과 벼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큰 갈색 피 이삭으로 색깔이 시루떡처럼 2층 구조를 이루고 있다.

볏과에 속한 피는 이삭이 패기 전까지는 벼와 구분이 잘 안 된다. 김매기를 할 때도 키 큰 놈은 대개 피이므로 제거해야 한다. 옛날에는 피도 죽을 쒀 끼니를 때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껏 새 모이로 이용된다.

수확의 계절이 오자 부지런한 농부의 볏논과 게으른 농부의 ‘벼 반, 피 반’ 논의 차이가 이렇게 나는 것인가. 아니면 온전한 볏논 농부는 제초제를 사용하고 ‘벼 반, 피 반’ 농부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 탓일까.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2015-10-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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