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낙화/박건승 논설위원

[길섶에서] 낙화/박건승 논설위원

박건승 기자
입력 2018-04-25 22:24
업데이트 2018-04-25 22:2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며칠 전 봄비가 꽤 사납게 내리던 날. 늦은 밤 창가를 물끄러미 보다 떨어지는 꽃잎을 떠올린 것은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벚꽃·살구꽃·개나리꽃이 시든 것은 한참 전 일이고, 철쭉처럼 키 작은 봄꽃만 남아 있는 터라 떨어질 꽃잎이 딱히 많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문득 낙화가 생각났던 것일까.

조지훈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주렴밖 성근 달이 하나 둘 스러지고/귀촉도 울음 뒤로 먼 산이 닥아서다/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낙화’)라고 적었다. 쓸쓸하다 못해 뭔가 싸하다. 하기야 어떤 무명씨는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고 자조적으로 읊조리기도 했다. 낙화에 대한 상념은 누구나 다 같을 순 없는 법.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이형기 ‘낙화’) 이 시인에게 낙화란 녹음과 결실을 향한 축복의 과정이었으리라. 낙화는 끝이 아니기에 꽃잎이 진다고 낙담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 꽃은 1년 뒤에 다시 피리니.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2018-04-26 31면
많이 본 뉴스
공무원 인기 시들해진 까닭은? 
한때 ‘신의 직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공무원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9급 공채 경쟁률은 21.8대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공무원 인기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낮은 임금
경직된 조직 문화
민원인 횡포
높은 업무 강도
미흡한 성과 보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