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쁠 때 걸려오는 전화도 잘 받는다. 차라리 잘 아는 이라면 조금 있다가 전화하마 하는 기별로 충분하겠지만, 애매하게 아는 이의 전화는 바쁨을 핑계로 얼른 끊기가 곤혹스럽다. 특히 집요함의 대명사 텔레마케팅 전화조차 잘 못 끊는다. 어떤 이들은 “괜찮습니다” 한마디로 잘도 끊던데 그게 영 불편하다. 게다가 듣다 보면 그럴싸한 느낌이 들어 혹한다. 그 탓에 숱한 보험에 든 뒤 아내로부터 지청구 듣고 해지하기 일쑤다. 그럼에도 아직껏 여전히 남아 있는 보험들로 넘쳐난다.
귀가 팔랑거리니 주머니가 함께 팔랑거리며 얇아진다. 최근 그 많던 보험을 일부 정리했다. 물론 그것도 전화 영업으로부터 시작됐다. 별로 쓸모없는 보험들에 몇백만원이 넘는 돈을 내왔음을 지적받으면서 말이다. 그러고 나서 또 새로운 보험에 가입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팔랑귀의 우유부단함으로 가입한 그 보험들이 훗날 긴요하게 역할을 할지 말이다. 이런 꿈조차 꾸지 못한다면 좀 우울해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