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문화인프라 투자 계속돼야 한다/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열린세상] 문화인프라 투자 계속돼야 한다/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입력 2012-06-20 00:00
수정 2012-06-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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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국력은 문화로도 표출되는가. 당연히 그렇다. 미국을 대체할 슈퍼파워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경제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그 발전이 비약적이다. 근래 중국의 대표 문화건축물을 꼽자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완공된 ‘국가대극원’이다. 오페라극장, 콘서트홀, 공연장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연장으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총 건축 연면적은 21만 7500㎡, 예술의전당의 1.7배 규모다. 작년부터 국가대극원은 각국 유수의 예술공연시설 대표들을 초청하는 문화포럼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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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모철민 예술의전당 사장
우리의 문화인프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1986년 과천으로 신축 이전한 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예술의전당 음악당과 서예박물관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이 1988년 서초동에 문을 열었다. 이어 1993년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와 한가람미술관이, 200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현 위치인 용산에 자리잡았다. 돌이켜 보면 1980년대 고도 경제 성장기를 거치면서 문화인프라에 대한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시설들을 건설할 당시 접근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은 점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나아가 국립중앙박물관을 제외하고는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접근 편의가 만족할 수준이 아니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 서초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역 사이에는 대검찰청, 서초경찰서, 국립중앙도서관, 공정거래위원회가 8차선 도로를 앞에 두고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도서관을 제외한 모든 기관들이 진입을 위한 횡단보도와 좌회전 차선을 갖추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국립중앙도서관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3000여명이다. 이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매일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화시설에 대한 상대적 홀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프랑스는 미테랑 대통령 재임 14년 동안 대규모 문화인프라를 확충하는 ‘그랑 프로제’(Grand projet)를 추진했다. 이 계획이 발표되자 ‘국가재정의 낭비, 허영과 오만함을 드러내는 무모한 시도’라는 거센 반대와 비난이 일었다. 그러나 문화를 통해 프랑스의 재기를 꿈꾸는 미테랑의 철학과 비전은 확고했다. 그 결과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미테랑도서관으로 불리는 국립도서관, 바스티유 오페라극장과 음악당을 포함한 라빌레트 공원단지, 라 데팡스의 새 개선문 등 현재 프랑스를 상징하는 문화시설들이 이때 만들어졌다. 시라크 대통령 말기인 2006년에는 국립 인류문화사 박물관인 케브랑리 박물관이 개관되었다. 현재 이들이 문화도시인 파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음은 당연지사다.

우리도 다시 문화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올 연말에 광화문 한복판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개관될 예정이고,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서울관이 소격동에 내년 초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한글박물관이 용산공원 내에 건설 중이고, 국립중앙도서관 세종시 분관도 내년 하반기 개관을 앞두고 있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도 본격적으로 재원이 투입되고 있다. 어려운 재정여건에도 이명박 정부가 문화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삶의 질을 높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공적자금으로 건립된 적지 않은 문화시설이 콘텐츠 부족으로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그러나 지역의 척박한 문화 환경을 감안하면, 현장의 문화 수요를 고려한 적정한 문화인프라 제공이 필수적이다. 제2의 도시 부산에는 작년에 개관한 영화의전당을 제외하고는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다. 세계적인 도시 수도 서울의 경우도 예술의전당의 음악당 이외에는 세계적 수준의 콘서트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복지재정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그나마 진행되는 문화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위축될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문화인프라는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무엇에 열정이 있는지, 무엇을 꿈꾸는지를 담고 있는 정신과 혼, 자부심의 그릇이다. 미래를 향한 혜안과 비전, 결단성을 가진 투자가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2012-06-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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