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논쟁의 장은 열려야 한다/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열린세상] 논쟁의 장은 열려야 한다/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입력 2012-06-22 00:00
수정 2012-06-2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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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메일함에서 눈에 띄는 메일을 한 통 발견했다. 메일을 보낸 측은 생물학 연구정보센터의 과학분야 설문조사기관 SciON으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학교과서 시조새 관련 논란’에 대하여 설문조사에 응답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6월 11일부터 15일까지 실시된 이 설문조사의 결과는 현재 SciON에 공개되어 있다. 최근 오래전 멸종된 시조새의 족보(?)를 둘러싼 갈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이하 교진추)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서 삭제할 것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냈고, 이에 고등학교 과학교과서를 출간하는 7개의 출판사 중 5개가 이 청원을 받아들여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부터 시작된 갈등이었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이 사건을 접하자마자 도버교육위원회 사건이 떠올랐다. 2005년 1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소도시 도버의 교육위원회는 ‘진화론은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유일한 과학이론이 아니기에, 생물학 시간에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도버 지역 학부모 11명은 해당 지침이 수정헌법 1조를 위반한다는 이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이 논쟁은 그해 12월 ‘지적 설계는 과학 이론이 아니라 종교 이론이기에 이는 위헌’이라는 판결문을 통해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최근 시조새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은 도버교육위원회 사건의 그것보다 더욱 석연찮은 느낌이 든다. 사실 이전부터 진화론은 확정된 이론이 아니라 단지 ‘가설’에 불과하며, 지적 설계가 종교적 교리를 넘어 과학 이론이 될 만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주장은 심심찮게 제기되어 왔다. 이는 진화론을 비롯한 고생물학 연구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 탓이다. 진화론의 경우, 연구 대상이 품고 있는 시간의 길이와 간극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그것을 훨씬 넘어서기에 남아 있는 몇 가지 화석을 징검다리 삼아 이론의 상당 부분을 논리적 추론으로 메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SciON의 응답자 다수가 지적했듯이 시조새를 둘러싼 문제 제기에서는 진화론 자체의 취약점보다는 이 논쟁을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취약점이 더 많이 노출되었다. 교진추의 청원이 제시된 이후 교과서에서 해당 부위가 삭제되는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청원에 대한 정확한 검토나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토론을 바탕으로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문제가 되는 부분을 삭제하여 아예 이에 대한 논쟁에서 빠지겠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서둘러 이를 덮어 버리려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 여기에서도 역시 드러난 것이다.

사실 세상 모든 과학 이론은 완벽하지 않다. 철저한 종교배척주의자이자 과학중심주의자인 리처드 도킨스조차도 과학 이론은 완벽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킨스는 그렇기에 과학 이론이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과학이론은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언제든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면 이전의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이론으로 거듭날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기에 오히려 가치 있는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이번 시조새 논란은 과학 이론이 가진 ‘열린 자세’를 무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 누구든 특정 과학 이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따라서 반론을 제기당했다는 것이 그 이론이 틀린 것이거나 가치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서 말했듯 진화론은 태생적 한계로 인해 그 어떤 과학 논란보다 반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반론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덮어 버리거나 삭제하게 된다면 해당 이론은 결국 사라져 버릴 것이다. 중요한 건 반론이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론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심도 있는 논쟁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논쟁의 장조차 열어주지 않은 채 서둘러 문제를 봉합해 버리려는 태도가 오히려 더 우려스러운 것이다.

2012-06-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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