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남북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열린세상] 남북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

입력 2012-06-27 00:00
수정 2012-06-2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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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가 6·25전쟁 6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매년 6월 25일이 되면 초등학교 시절 학교 게시판과 동네 담벼락에 수도 없이 붙어 있던 ‘상기하자 6·25’ 포스터가 생각난다. 그리고 운동장에 모여 우렁차게 불렀던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로 시작되는 6·25 노래가 떠오른다. 당시는 6·25와 6·25 노래가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고 기념식에 참석했고 또 노래를 불렀다. 물론 공산당은 아주 나쁜, 상종 못할 악당이라는 것쯤은 알았다. 이후로 ‘반공’과 ‘멸공’을 수도 없이 외치며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자연스레 나의 학창시절은 반공 이데올로기의 교육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남북 관련 이데올로기나 체제 논쟁을 할 때면 혹시 정보원이 없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했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젊음을 보냈다. 아마 대부분의 내 세대가 다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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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교수
박양우 중앙대 예술대학원교수
이제 세월이 흘러 오십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증폭되는 정치권의 남북 이데올로기 논쟁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생소한 말이 갑자기 횡행하기 시작하더니만 정권 말기가 되어서도 여전히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이른바 진보통합당 사태를 계기로 소위 보수 신문들과 집권여당, 심지어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과거 독재시절로 회귀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종북문제에 관해 공격적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를 언급해 가며 수세에 몰렸던 이데올로기 싸움을 역전시키기 위해 총반격에 나서고 있고 카운터 블로를 맞은 여당은 한 발짝 뒤로 빼고 있는 형국이다. 가히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시대에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진 촌놈들의 현대판 이데올로기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주변 강대국들은 남북 간은 물론 남남 간의 싸움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기들의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정치인들과 언론이 만든 이 싸움판에서 불쌍한 건 대한민국이요 대한민국 국민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데올로기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양심, 사상, 언론과 학문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 그리고 국민 뇌리에 이데올로기 트라우마가 너무도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지,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루거나 어느 한쪽이라도 편드는 얘기를 하다가는 봉변당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치권과 언론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데올로기 싸움판을 벌여도 시민으로 위장한 일부 정치패들의 집단행동을 빼면 대다수 국민은 지겨운 싸움을 마냥 구경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경직된 사회주의와 불평등한 자본주의의 한계를 직시하고 제3의 길을 주창한 지도 10년이 지났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남과 북은 서로 상생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게 되었다. 우리 국민은 과거처럼 반공교육을 받지 않아도 이념이 흔들릴 정도로 허약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데올로기 타령으로 허송세월할 셈인가.

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싶다. 어느 누구도 부당한 권력의 통제 없이 건전한 자유 시민으로 살아가는 그런 나라에서 살고 싶다. 아직도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아니라고 말리고 싶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해묵은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분열되고 서로 생채기 내는 상황이 지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남북 이데올로기라는 벽을 넘어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경제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회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느 때보다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한 지금, 정치권과 언론이 더 이상 낡은 이데올로기 논쟁에 사로잡혀 공허한 말장난으로 세월을 축내지 말고 유연한 남북관계, 현명한 외교 전략과 효율적인 경제운용 그리고 인간다운 삶의 질 등 보다 발전적인 정책의제들에 관해 더 진지한 고민과 대안을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

2012-06-2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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