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상에 없는 엄마 지니(킴벌리 크랜달)가 아들 웨스(조시 위긴스)에게 남긴 이런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싶다.
다른 하나, ‘기쁨과 고통은 실상 한 몸이다. 항상 둘은 붙어 다닌다.’ 이에 따르면 고통 없는 기쁨이란 애초에 성립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기쁨과 고통을 새롭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고통을 즐겨라”는 실천하기 어려운 지침이다. 게다가 이 말은 불합리한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할 때 자주 쓰는 ‘갑’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세밀하게 고통의 기쁨, 혹은 기쁨의 고통을 따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이를 필연적인 인생의 본질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태어났으므로 죽는다.’ ‘만났으므로 헤어진다.’ 이와 같은 상실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그러나 여기에는 ‘끝났으므로 시작한다’는 생성의 과정도 포함된다. 어떤 대상이 사라졌음을 슬퍼하는 애도는 좋았던 옛날에 머물기 위함이 아니라, 오늘을 좋은 날로 바꿔 가기 위해 수행하는 의식이다.
웨스의 아빠 빌(J. K. 시몬스)은 아내의 죽음 이후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내팽개쳤다.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랑의 기쁨은 목적을 잃자 이별의 고통으로 변했다. ‘기쁨과 고통은 실상 한 몸’이라는 명제가 실감 나는 순간이다. 그럼 빌이 마음을 다잡으려면 어떡해야 하나. 괴로운 일을 해야만 한다. 지니를 완전히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커트 보엘커 감독은 웨스가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모습과 빌이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는 모습을 교차 편집했다. 고통스러운 가운데 기쁨이, 기뻐하는 가운데 고통이 생겨나는 모순적인 인생의 법칙은 그렇게 거기 담긴다. 엎치락뒤치락하는 행불행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