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강간법’ 논란‥피해자와 결혼하면 면벌

요르단 ‘강간법’ 논란‥피해자와 결혼하면 면벌

입력 2012-06-28 00:00
업데이트 2012-06-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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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에서는 최근 14세 소녀를 납치해 사흘 동안 성폭행한 가해자가 법적으로 처벌을 면하려고 피해자와 결혼하기로 합의, 논란을 일으켰다.

요르단 같은 보수적 무슬림 사회에서는 성폭행범이 ‘강간법’이라고 알려진 형법 308조 덕에 버젓이 활개치고 돌아다닐 수 있다.

형법 308조는 강간범이 피해 여성과 결혼하기로 합의하면 강간 혐의를 벗겨 준다. 대신 강간범은 5년내 이혼할 수 없다.

요르단 사법 당국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4월 19세 남성이 북부 도시 자르카에서 쇼핑 중인 소녀를 사막에 마련한 텐트로 납치해 사흘간 강간한데서 비롯됐다.

이 소녀는 나중에 정기 순찰중인 경찰에 발견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고 범인은 체포됐다.

범인은 그러나 자신의 범행에 대한 뉴스가 나간지 수일 내 피해 소녀와 결혼하기로 합의했고 그에 대한 기소 절차는 모두 중단됐다.

앞서 이달에는 15세 소녀가 수도 암만의 빈 아파트로 유인돼 한 젊은이에게 성폭행을 당했으나, 이 가해자도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현재 피해자 가족과 결혼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르단 여성연합의 나디아 샴루크 회장은 “이 형법 조항 때문에 범죄자가 도리어 결혼이라는 보상까지 받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면서 “이 같은 법적용은 또다른 범죄를 부른다. 미성년자인 14세 소녀가 도대체 자신의 강간범과 결혼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법원기록에 따르면 15세 미만의 소녀를 성폭행하는 자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요르단에서는 지난 2010년에만 379건의 강간 사건이 발생했다.

변호사 겸 인권운동가인 에바 아부 할라웨는 “한번은 강간범이 결혼을 원치 않는 18세 소녀 피해자와 결혼하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며 “하지만 소녀의 아버지가 실업자인 강간범과 결국 합의를 봤다. 이 자는 이미 다른 여성과 결혼해 아이가 여섯이고 가족 생계조차 보장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아부 할라웨는 문제의 법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면서 폐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요르단 최초의 여성 검시관인 이스라 타왈베는 “피해 소녀의 입장에서는 형법 308조에 따라 결혼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의 부모나 친지에 의해 ‘명예살인’을 당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그는 “이 법은 우리 사회 현실에 맞다. 가해자에게 결혼을 강제함으로써 피해 소녀를 보호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요르단에서는 해마다 15∼20명의 여성이 순결을 잃었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을 당하며 올해도 지금까지 최소 6건의 명예살인이 벌어졌다. 살인죄는 사형을 받을 수 있지만 명예살인의 경우 때때로 감형된다.

그러나 보건부 소속 의사인 하니 자샨은 “이 법은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평생 깊은 충격을 남기는데 강간범과 결혼하게 된다면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되기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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