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日 총리 조어도 주권 주장에 강력 반발

中, 日 총리 조어도 주권 주장에 강력 반발

입력 2012-08-25 00:00
업데이트 2012-08-25 16:04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中 산둥성, 캐나다 벤쿠버서 日 규탄시위 열려

중국 정부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尖閣> 열도) 주권 수호 주장은 “중국의 영토주권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훙레이(洪磊) 외교부 대변인은 25일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노다 총리의 전날 주장을 반박했다.

훙 대변인은 우선 댜오위다오와 그 부속 도서는 중국인이 첫 발견하고 이름을 짓고 사용해온 중국 고유의 영토라고 운을 뗐다.

그는 역사적으로 따져보면 명조 시대인 1403년 출간된 ‘순풍상송(順風相送)’에 현재 댜오위다오의 옛 이름인 ‘댜오쉬(釣魚嶼)’ 등의 명칭이 발견되며 명조 때 저장(浙江)성에서 근무하던 해군 무관인 후쭝셴(胡宗憲)이 댜오위다오와 부속 섬을 방문한 기록이 ‘주해도편(籌海圖編)’에 나온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기록이 바로 중국이 명조(1368∼1644년) 때부터 댜오위다오를 해상 방어 지역에 넣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훙 대변인은 일본이 1895년 청일전쟁 당시 댜오위다오를 획득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불법적인 수단을 통한 강점이었던 탓에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서 나온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회담에 따르면 패전국인 일본은 불법 점유한 영토를 반환하게 돼 있기 때문에 일본이 강점했던 중국 북동부 지역과 대만, 댜오위다오 등은 마땅히 반환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국제적 합의를 무시하고 미국과 일본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체결해 댜오위다오를 반환하지 않았고 1971년에는 미국이 일본에 댜오위다오 관할권을 넘겼다면서, 그러나 이는 “중국 영토에 대한 사적 거래”에 불과하며 중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다 총리는 전날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센카쿠 열도는 “청일 전쟁 때 일본이 획득한 영토”라며 “국가의 영토주권을 지키기 위해 불퇴전의 각오로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중국 산둥(山東)성 남동부 해안도시인 르자오(日照)시에서 반일 시위가 벌어졌다. 100여명 정도의 시위대는 댜오위다오가 일본 땅이라는 일본 총리의 주장을 규탄했다.

지난 19일 광둥(廣東)성 선전에서는 성난 시위대가 일본 음식점과 일제 자동차를 공격할 정도의 과격 시위가 벌어졌으나 중국 정부의 자제 노력으로 중국 내 반일 시위가 약간 수그러들었다.

통신은 아울러 현지시간으로 24일 캐나다 밴쿠버의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중국인 시위대 200여명이 “중국 영토인 댜오위다오에 대한 일본의 도발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공무원 인기 시들해진 까닭은? 
한때 ‘신의 직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공무원의 인기가 식어가고 있습니다. 올해 9급 공채 경쟁률은 21.8대1로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공무원 인기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낮은 임금
경직된 조직 문화
민원인 횡포
높은 업무 강도
미흡한 성과 보상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