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유럽-일 환율전쟁 다시 시작하나

미-유럽-일 환율전쟁 다시 시작하나

입력 2015-05-21 09:56
수정 2015-05-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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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일본의 환율 전쟁이 재연될 조짐이다.

유럽중앙은행 쪽에서 도발에 나섰기 때문이다. 19일 프랑스 출신의 브느와 쾨레 ECB 집행이사는 런던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ECB가 일정한 수준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일시적으로 자산 매입 프로그램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쾨레 이사는 이 자리에서 “7월과 8월 유동성 부족에 대비해 ECB가 5월과 6월에 국채를 앞당겨 추가로 매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달 600억 유로로 정한 자산매입 규모를 5월과 6월에 일시적으로 좀 더 늘리겠다는 의미였다.

그의 발언은 유럽 금융시장의 요동을 초래했다. 유로존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하락한 가운데 유로·달러는 지난 3거래일 사이 3% 넘게 밀리며 3월 중순 이후 상승분의 3분의 1 가량을 내준 상태다.

시장에서는 그의 ‘구두 개입’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최근 미국 달러화 강세가 주춤하면서 유로화의 강세 조짐이 나타났고 유럽 채권 시장의 변동성도 커진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유로화 환율은 4월 중순까지만 해도 1.05달러였으나 이달들어 1.14달러까지 상승하면서 지난 3월 ECB가 대대적인 양적 완화를 단행하기 전의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3월에 단행한 과감한 ‘승부수’는 즉효가 있었다. 독일을 비롯한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마이너스권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유로화는 급락하고 유럽 주식시장은 일제히 상승을 시작했다.

미국 경제가 강력한 회복 기조를 보인 것도 달러화 강세에 일조한 요인이다. 하지만 미국의 수출 부진, 더 나아가서는 미국 경제 회복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어 달러화 강세가 오래 지속되자 업계와 의회 등에서는 급기야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미국공급관리협회(ISM)이 발표하는 미국의 수출 주문 지수가 2개월 연속 50 밑으로 떨어진 것은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지난달 열린 미국연방준비제도(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는 미국 달러화의 강세로 인한 수출 부진이 예상보다 더 크고 오랫동안 미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20일 공개된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위원들은 일부 주요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번지는 마이너스 국채 금리를 미국 달러화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하기도 했다는 것.

FED가 금리 인상 시기를 놓고 분주하게 저울질하는 한편으로는 달러화 강세에도 유념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처럼 유로화가 약세로 돌아서자 주춤해졌던 외환시장에서는 유로·달러 패리티(1유로=1달러) 전망도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쾨레 ECB 이사의 발언이 나온 이후로 유로화 약세론자들의 전망이 부각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모건스탠리와 삭소뱅크는 연내 유로·달러가 1달러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건스탠리의 한스 레데커 글로벌 환율전략 담당자는 “유로·달러 약세를 예상하고 있다”면서 “ECB는 지금 매우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유로화 약세 여건을 만들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삭소뱅크의 스틴 제이콥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ECB가 느끼기에 유로화 반등 속도가 너무 지나쳤다”면서 12월께 유로·달러가 1달러로 밀릴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의 관심은 미국이 1달러=1유로의 등가 환율을 향해 유로화가 약세 행진을 하는 것을 마냥 손놓고 지켜 볼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시장에서는 결국은 미국도 양적완화를 장기화할지 모른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유로-달러 환율에 동반해 달러·엔화 환율은 121엔대까지 하락한 상태다. 근 2개월만에 엔화도 약세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달러·엔 환율이 118엔~120엔 범위의 박스권 장세에서 벗어난 것을 시작으로 연말에는 달러당 125엔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유럽이 이처럼 환율을 놓고 예민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과 관련해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이 괴로운 위치에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 신문에 미국과 유럽이 벌이는 환율 전쟁의 여파로 “급속한 엔고가 진행되면 결국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 때문에 21일과 22일 열리는 일본은행의 금융정책 결정회의가 끝난 뒤 나올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입에서 양적완화의 장기화를 뒷받침하는 코멘트가 나올 것인지가 주목된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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